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노후에 대한 불안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큰 병에 걸리면 어쩌지’, ‘돈이 없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말하는 노후에 필요한 최저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지금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이, 오래, 돈을 벌어야 될까.
필요한 만큼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다는 노후에 대한 불안은 내가 더 바쁘게 살아야 할 이유였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더 좋은 집에 살아야 하고, 더 좋은 남편을 만나야 하고, 그렇게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더 좋은 것’에 대한 집착과 갈망은 모두 노후에 더 편하게 잘 살고자 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 늘 만족하지 못했고, 항상 그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매일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졸업하기도 전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유명 대기업에 취업을 했다. 감기 몸살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밤새 시험공부를 했고, 담석 때문에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출근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삶 속에 현재의 행복은 없었다.
집안의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우는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좀처럼 물건을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집안에서 꾸준히 증식하던 쓸데없는 물건들. 예뻐서, 세일해서, 유행이라서, 그냥 사고 싶어서 등 갖은 이유를 들고 구입했던 것들이 모두 예쁜 쓰레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물건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뭔가를 구입할 때는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사지 않고, 꼭 필요한 것들만 구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장에 돈이 남기 시작했다. 저절로 매달 저축률이 상승했다. 신기했다. 애써 힘들게 돈 아끼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절약이 되다니 말이다. 그동안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돈을 아낄 땐 내가 궁상맞게 느껴졌는데,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절약 생활과 높은 저축률에 돈 모으는 재미가 붙었다.
돈을 적게 쓰는 생활이 익숙해지자, 적게 버는 삶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돈도 물건처럼 내가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들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꼭 필요한 만큼만 벌면 된다. 작은 규모의 생활을 통해 적은 돈을 소비하며 살 수 있다면,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하거나 나의 모든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 비로소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을 잘 활용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적게 쓰는 삶을 살면서 더는 돈이 무섭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쓸 만큼의 돈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은 불필요하게 불안해하던 노후에 대한 걱정도 날려 주었다.
부부 모두 국민 연금을 착실히 내고 있고, 최소한의 의료비를 보장하기 위한 보험까지 모두 가입했다. 책상 앞에 앉아 흰 종이를 앞에 두고 앞으로 나이 들어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해보았다. 물가 상승률을 생각해도, 지금 모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노후를 불안해했던 이유는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내 삶에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경제적 자유를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해, 돈을 더 모아야 해라고 생각했었다. 수십억 이상의 돈을 가져야 경제적 자유가 달성된다고 생각했고, 그게 노후를 자유롭게 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적게 쓰는 삶에 익숙해지며 나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충분히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이 많아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지금도 충분하다는 마음. 이보다 더 적은 돈으로도 잘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내게 진짜 경제적 자유를 주었다. 무언가를 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지금도 충분하다고 느끼면 될 뿐이었다.
나의 노후 대비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모으려고 애쓰는 대신에,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삶의 진짜 기술들을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다. 남편과 함께 집 근처 주말 농장을 계약해서 자급자족을 연습할 수 있는 텃밭을 가꾸고 있다. 작은 오븐을 구입해서 건강한 빵을 직접 구워서 먹고 있다. 가정용 커피 머신을 구입해서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고 있다. 장 보는 채소값, 빵값, 커피값을 아끼고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외주화 하지 않고 내가 직접 만들어 낸다는 데에서 오는 근본 있는 자신감이 가장 큰 수확이다. 내년에는 재봉틀을 배워 가벼운 여름옷들을 만들어 보고 기본적인 수선은 직접 해 볼 생각이다.
운동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노후를 위해 돈을 저장하기보다 근력을 저장하자는 생각이다. 꾸준한 자급자족 연습 덕분에 돈 없이는 살아도, 근력 없이는 못 살 것 같다는 게 이유. 이렇듯 나는 돈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다른 관점에서 노후 대비가 가능해졌다. 돈만 모을 때보다 노후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무엇보다 더 이상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없고 과거에 대한 버리지 못한 미련이 없으니 현재를 더 충실히, 온전하게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나이 들어가는 게 기대된다. 지금도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데, 앞으로는 얼마나 재밌는 삶이 펼쳐질까! 그런 생각을 하면 할머니가 되는 것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