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까지 나는 사학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소속감 없이 계약직만을 전전(輾轉)하는 신세였다.지금은 학사 학위가 있으면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지만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당시에는4년제 대학 관련 학과* 전공자라고 해도 문화재연구원에서는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주지 않았다. 그게 연구원들간의 암묵적인 규정이었던 것 같다.
*고고학과, 고고인류학과, 사학과, 국사학과, 고고미술사학과 등
연구원으로부터 정규직으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언제 받을지 모르는,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발굴 현장에서 허리 숙여 호미질, 페인트칠만 주야장천 하다가 그만두었다.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에는 흥미가 없었다. 다시 다른 연구원 계약직으로 들어가서 이번에는 현장이 아닌 실내 작업, 발굴조사 보고서에 들어갈 유물, 유구 도면작업, 유물 탁본, 유물 사진 촬영 보조 등의 일을 하였다.
같이 일하던 직원 중 하나가 공무원시험을 공부할 계획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일을 그만두었다. 몇 개월 후 나도 일본으로 떠난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제일 처음 일했던 현장은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유적이었다. 지금은 인근 주민들이 이용하는 체육시설 공원이 되었다.
두 번째 현장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88고속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가마터였다. 일할 때 가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현장 주변을 기웃거리시며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파갔는데 더 파갈 게 있냐고 하셨었다.
나중에 그 당시 일했던 연구원 쌤을 만났는데그 현장에서 수습, 복원한 유물들이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었다며 가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하였다. 현장에서유물을 세척하고 유물 상자를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하긴 했었지만 박물관에 가 보니 잘 복원된 고려상감청자와 조선분청사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래되어서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래서 기억보다 기록이 중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