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 있는데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였다. 일본 사람이 쓴 책이다. 그때 내가 세는 나이로 29살이었고 작가처럼 비정규직으로만 일해 왔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29살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채로 오사카로 떠날 때는 두려움이 없었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해 실패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한국에서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며 3D직종에 종사하거나 주방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본에서도 고고학과 관련된 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했다가는 불가능하다거나 미쳤다는 소리만 들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일본 문화재 발굴회사에서 유물 실측, 복원, 탁본, 넘버링 등의 작업을 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유물 실측은 배우지 못했기에 팀장인 카케이상이 유물 실측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근현대사 흐름 상 한국 고고학은 일본 고고학에서 왔는데, 한국에서 사용했던 도구들도 전부 일제였기에 일본에서도 익숙한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도시락을 싸 다녔다. 내가 일본어가 서툴러서 다 같이 점심 먹으며 얘기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다들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집중해서 듣다가 흐름을 놓쳐 못 알아들으면 알아듣는 표정을 하고서는 멍 때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한국에서는 어떤가요?"라는 질문이 들리면 깜짝 놀라서 할 말을 찾다가 동문서답하기도 하였다. 못 알아들은 걸 티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아, 못 알아들었구나'라고 생각했겠지!
어쨌든 회사 사람들이랑 친해져서 일을 마치고 같이 맥주 한잔 하기도 하고 주말에 박물관 구경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