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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Apr 22. 2024

자동차 트렁크 위에 짬뽕을 두고 먹어도 좋았다

M세대 메리의 찌질한 실패 이야기

<기억에 남은 현장들>


1. 청도 발굴 현장에 투입되어 일했다. 조선시대 토광묘* 300여 기 정도가 나온 현장이었다. 토광묘 내부에서 부장품으로 당시에 썼던 청동그릇, 수저, 장신구 등이 나왔다.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는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인부 어르신들도 함께 일 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와닿았던 건 현장에서 인부 어르신들과 일하면서였다. 꾸준히 현장 일을 해온 인부 어르신들은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연구원들보다 땅도 잘 파고 유구** 구별도 더 잘하셨다. 토광묘를 팠는데 유물(부장품)이 별로 없으면 "아이고, 이 집은 가난했는갑다."라고 하시기도 했다.


*땅을 파서 시신을 직접 안치(安置)하거나 시신을 담은 목관을 안치하는 무덤

 **유구(遺構) : 유적을 이루는 개개의 장소. 예를 들어 주거지 같은 것들.


  연구원들끼리 쓰는 표현 중에 '현장을 쳐낸다'는 표현이 있다. 개발 측과 발굴 측이 계약을 맺은 후에 기한 내에 발굴조사를 마쳐야 하는 데 이를 속되게 표현한 말이다. 발굴조사 막바지에는 현장을 쳐내기에 바빴다.


청도 발굴 조사를 마치고 연구원들 단체 사진. 30대 초반의 꾸질꾸질한 김메리.




2. 울산 발굴 현장에 투입되어 일했다. 현장이 매우 커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삼국시대 석곽묘*, 조선시대 숯가마, 토광묘** 등이 나왔다. 금요일 현장 일을 마치고 대구에 왔는데 발가락이 빨개져있고 자꾸 가려웠다. 부모님께서 내 발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동상 걸렸네!"


  '오 동상 걸리면 가려울 수 있구나!'


*돌 덧널무덤

**땅을 파서 시신을 직접 안치(安置)하거나 시신을 담은 목관을 안치하는 무덤


  비록 여름에 선크림 제대로 안 발라서 손등이 다 타고 겨울에 동상에 걸렸어도, 현장 일 마치고 같이 숙소 생활 하는 연구원쌤이랑 자전거 타고 마트 장 보러 다니고 술 마시러 다녔던 건 재밌었다. 5일장이 열릴 때마다 구경 다니면서 군것질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그 쌤도 나도 서로 다른 연구원으로 이직하였지만 말이다.


유구 실측하다가 유물(자기편)을 수습하였다
현장 가는 길의 풍경
현장에 눈 온 풍경




3. 대구 발굴 현장에 투입되어 일했다. 석실묘*도 나오고 청동기시대 주거지도 나왔다. 주택가에서 발굴을 하면 지나가던 주민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노가다네!" 하는 소리도 들리고 직접 "뭐가 나왔어요?" 하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굴식 돌방무덤


  여름에 더운 데서 일하고 겨울에 추운 데서 일하지만 밖에서 일을 한다는 게 좋은 점도 있었다. 회식 다음 찬 바람맞으며 일하다 보면 저절로 숙취 해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난방기가 틀어져있는 사무실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내가 수족냉증이라 추위를 많이 타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회식 다음 날 점심시간에 현장으로 짬뽕 배달을 시켜서 연구원쌤이랑 같이 자동차 트렁크 위에 짬뽕 그릇을 올려두고 먹은 적이 있다.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일했었지만 지금은 기억이 미화되어 그마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자세히 보면 눈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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