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리 Apr 25. 2024

전공을 살려서 일하고 싶었어

M세대 메리의 찌질한 실패 이야기

  땅 파면 문화재 나온다는 경주 발굴 현장에 투입되어 일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고고인류학과 학생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였는데 현장 근처의 빈집을 숙소로 사용했다. 방이 총 3개였는데 나와 여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한방, 남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한방, 남자 연구원 두 분이 한방을 썼다.

  숙소 뒤편 크나큰 언덕에 현장이 위치해 있었는데 청동기 시대 주거지들 몇십여 기가 나오는 큰 현장이었다. 겨울이라 땅이 얼어있다 보니 칼바람 맞으며 땅을 파는 게 쉽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면서 아르바이트생들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학교로 돌아갔다. 대신에 팀원들이 현장에 더 투입되었다. 연구원 쌤들이랑 나는 숙소 생활을 청산(?)하고 현장 근처 모텔에서 생활했다. 월요일 아침 대구에서 경주 현장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에 일을 마치고 근처 모텔을 찾아가서 체크인하였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이 되면 모텔에서 체크아웃 한 다음, 현장으로 출근했다가 일을 마치면 다들 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금요일 일을 마치면 다들 집으로 가기 바빴는데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구로 가기 바빠 경주의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나온 대학의 박사 학위 과정을 공부하고 계시는 분이 말씀하셨었다.


  "○○대 사학과 나온 아들* 다 공무원시험 공부한다카노."


*'애들'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아들, 딸' 할 때 아들 아님.


  다른 연구원에 다니는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다니던 대학원도, 일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고 했었다.


  "전공을 살려서 일하고 싶었어."


  그때는 귓등으로 흘려보냈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말들 때문에 흔들렸다기보다 내가 일을 못한다고 느꼈고 현장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그 말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몸과 마음 둘 다 힘든 일'이라는 말이다. 육체노동은 몸이 힘들고 사무직은 마음이 힘든데, 이 일은 둘 다 하는 일이다 보니 그렇다.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것, 타지 생활 하는 것, 화장실 가기 불편한 것은 견딜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능력 부족이었다. 나 스스로 업무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승진을 해서 책임감은 높아졌는데 학부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왔거나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들보다 업무 능력이 못하였다. 나 때문에 팀원들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흥미와 적성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직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업(職業)의 사전적 의미 :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좀 더 열정을 가지고 노력했다면 좋았을 텐데!


유구 실측


이전 05화 자동차 트렁크 위에 짬뽕을 두고 먹어도 좋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