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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리 Apr 15. 2024

연봉보다 중요했던 것

M세대 메리의 찌질한 실패 이야기

  일본에서 돌아와 문화재 연구원에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1년이 지나 연봉 협상을 하였다. 비록 협상이 아닌 통보에 가까웠지만 연봉이 올랐다. 그러나 며칠 후 일 다니면서 지원하였던 다른 연구원으로 이직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회사의 나에 대한 처우가 박하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퇴사하면서 가진 술자리에서 어느 직원이 나를 두고 '○○쌤은 고집이 세서 못 말린다, 자기가 결정한 대로 하게 둬야 한다'는 얘기를 하였다. 또 다른 직원은 조용했던 내가 나간다고 하니 직원들이 조금 놀란 눈치라고 얘기하였다. 어쨌든 나는 다른 연구원으로 출근하기로 하였고 돌이킬 수 없었다.

  이직한 곳은 제주도에 위치한 문화재 연구원이었다. 출근하기 며칠 전에 제주도로 갔다. 직업의 특성상 현장을 다니려면 차는 필수이기에 부모님께서  차를 배에 실어 제주도로 보내주기로 하셨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원룸을 구하러 다녔다.

  제주도는 사글세를 받는 곳이 많았다. 이직을 하고 다른 지역에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막상 와서 원룸을 구하러 돌아다니다 보니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았다. 결국 연구원에 출근하여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나왔다.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내 얘기를 듣던 엄마께서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다.


  "제주도 간 김에 한라산이나 갔다 온나!"


  그러고 보니 살면서 제주도에 처음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직업의 특성상 내 캐리어에 챙겨 온 옷들은 아웃도어들이었고 등산화도 챙겨 왔다. 한라산 등반 방법을 찾아 여러 경로들 중 쉬워 보이는 경로를 택했다.

  다음 날 어둠이 물러나기 전에 일어나 준비를 마친 나는 제주 시내버스를 타고 한라산 입구에서 내렸다. 하늘은 아직 남색 빛을 띠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있었다. 나도 그 사람들 뒤에 서 있다가 함께 산을 올랐다. 혼자 왔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무섭지도, 쓸쓸하지도 않았다.

백록담!
산신령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뭇잎으로 돛단배 만들었다
돛단배 물에 띄우기
노루도 보았다

  한라산 등반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주인아저씨와 스텝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혼자 한라산 다녀왔냐며 등산복 차림의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 이후로 한라산을 가 본 적이 없다. 그때 안 갔으면 아직도 한라산에 못 가 봤을 텐데 엄마 말 듣길 잘했지!

  제주도에 있는 동안 대구의 또 다른 연구원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와서 한번 보자고 하셨다. 대구에 와서 원장님과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자신의 연구원에 들어와서 일해 볼 생각은 없냐고 하셨다. 잠깐 공무원 시험공부를 고민하였던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장님께서는 일본 회사에서의 경력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며 경력증명서를 문화재청에 올리고 명함도 만들어 주셨다. 내가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나를 좋게 봐주신 것에 감사했다.

  내가 이전 회사에서 나에 대한 처우가 박하다고 느꼈던 건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다. 일본 회사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 다른 직원들에게는 있는 명함이 나에게만 없는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내가 바랐던 건 소속감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현장에 필요한 물품이나 연구원들이 입을 아웃도어를 제공할 때 부족하지 않을 만큼 지원해 주는 것도 중요했다. 다른 연구원에서 일하는 지인이 자기 연구원에서는 더운 여름날 현장에 생수를 제공하는 것조차 아끼더라는 얘기를 듣고 놀랐었다.


명함 이 종이 쪼가리가 뭐라고.




  별개의 이야기지만 우연히 학창 시절 나의 우상 에쵸티 멤버 중 하나가 직원들을 폭행, 하대했다는 폭로 기사를 보았다. 나는 다른 것들보다 직원들이 밖에서 일할 때 돈 아끼느라 생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내용에 너무 실망하였다. 밖에서 일하는 고충알기에... 물을 안 주고 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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