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엄마께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 오셨습니다. 엄마 친구분께서 키울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그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 되었어요. 강아지는 2살이고 수컷 시츄였어요. 이름은 그전 가족들이 부르던 재키라는 이름을 그대로 불렀어요. 우리 가족들은 모두 재키를 좋아했어요. 재키는 엄청 활발하고 잘 짖고 예쁘게 생겼었어요. 처음 재키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저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없었어요. 엄마께서 전화하셔서 약간 들뜬 목소리로 “○○아, 들어봐 봐라.” 하시는데 멍멍 소리가 들렸어요.
재키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모습을 나만 못 봤기에 그때 어땠는지 궁금해서 아버지께 여쭤보니 우리 가족을 낯설어했다고 합니다. 달라진 환경이 낯설고 두려웠는지 멍멍 짖기도 하고 얌전히 있질 못하고 마구 움직여서 아버지께서 “야가 와이리 분답노.”라고 하셨다고 해요.
재키는 영리하고 산책을 미친 듯이 좋아했습니다. 재키 집은 베란다에 있었는데 집안에서 산책 가려고 줄을 챙기면 소리만 듣고 바로 알아차리고 날뛰며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했어요.
재키는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산책 도중에 마주친 아이들, 할아버지께서 재키를 만질 때도 가만히 있었어요. 특히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자기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놀이하며 노는 모습을 보고는 그쪽을 향해 다가가려고 낑낑댔어요. 어느 초등학생이 재키를 보고 다가와서 말을 걸기에 한번 안아보라고 재키를 주었는데 그 아이에게 가만히 안겨있기도 했어요.
엄마 친구네가 재키를 키우지 못했던 이유가 전셋집이라 눈치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도 전셋집이었고 주인집에서 재키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2007년 4월, 엄마께서 재키를 다른 친구분의 시골 친정에 맡겼어요. 재키가 있는 곳이 궁금해서 엄마께 여쭤보니 위치를 알려주셨어요. 재키가 있는 곳은 현풍 옆의 달성군 구지면이었습니다. 시골이지만그 집은 도로변에 있었고, 바로 옆에 가마솥곰탕이라는 큰 식당이 있었기에 찾기 쉬웠어요.
2007년 7월, 제가 찾아갔을 때 시골집 문이 열려 있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서 저도 모르게 현관문 안으로 살짝 들어왔어요. 재키가 줄에 묶여 있었고 나를 바로 알아보고 매우 반가워했어요. 저도 3개월 만에 재키를 만났기 때문에 너무 좋았지만 재키를 마주 보며 가만히 서 있었어요. 집주인 할머니께서 나오셔서 저를 거실로 안내해 주셨고, 할머니와 재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할머니 허락을 받아 재키와 산책을 했어요. 잘 모르는 시골길을 아주 오랫동안 걸어 다녔어요.
재키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저를 보며 할머니께서 다시 재키를 데려가라고 하셨습니다. 재키를 종이상자에 넣어 할머니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갔습니다. 할머니께서 버스기사 아저씨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저는 재키가 들어가 있는 종이상자를 안은 채로 서 있었고요. 기사 아저씨 허락을 받아 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엄청 활발하고 가만히 있질 못하는 재키인데 내 무릎 위 종이상자 안에서 얌전히 있었어요. 자기를 다시 데려가는 걸 아는 것 같았어요.
대구의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종이상자를 버리고 재키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이동 중이었어요. 할머니께 얘길 듣고 정류장으로 오시던 엄마와 길에서 마주쳤어요. 엄마께서는 다시 재키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시골집에 데려다주셨어요. 가는 동안 택시 안에서 재키를 쓰다듬으며 계속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재키를 목욕시켜 주고 병원 데려가서 중성화 수술, 미용도 시켜 준 사람은 부모님이었고, 저와 동생은 재키와 놀아줄 줄만 알지 관리를 해주진 않았었어요. 저보다 부모님께서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더 마음 아프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로 저는 그곳을 또 찾아갔고, 이번에는 재키 털도 깎고 건강검진도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좋은 분이셨지만 강아지 미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분 같았어요. 시골집에서 동물병원까지 걸어서 1시간 정도 거리였는데,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어떻게 찾아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래도 재키와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모험하는 기분이었어요.
총 번 3번 정도 찾아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엄마 친구분께서 “너네 딸내미 때문에 못살겠다.” 하셨나 봐요. 저는 그때 학생이었고 사회생활을 할 줄 몰랐어요. 할머니께 그렇게 찾아가면서도 음료수 한 번 사들고 갈 생각도 못했어요. 음료수 문제가 아니지만요! 재키를 보고 돌아올 때 재키가 낑낑대며 짖었어요. 시골집 앞 도로 건너편이 버스정류장이었는데, 도로 건너편인 버스정류장까지 짖어 대는 소리가 들렸고 제가 버스 탈 때까지 계속 짖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찾아간 것이 재키에게 더 안 좋았던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 후 어느 날 제가 찍어온 재키 사진을 보고 웃고만 말던 남동생이 “재키 보러 갈까?” 하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저희 대화를 들으시던 엄마께서 재키는 그 시골집 옆 식당에 온 어느 손님이 보고는 자신이 키우겠다며 부산으로 데려갔다고 했어요. 그 얘길 들으니 우리 가족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재키를 찾아가지 않았어요.
가끔 재키 생각이 났지만 거의 잊고 지냈어요. 15년이 흘러 문득 재키가 보고 싶어졌어요.'혹시나 엄마께서 내가 시골집에 찾아가지 않게 하려고 재키가 부산으로 갔다는 거짓말을 하신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의구심도 들었어요. 그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도로로 개발이 되어 재키가 있던 시골집도, 그 옆 식당도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괜히 찾아가 봤어요. 그 당시는 학생 때라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가니 30분도 안 되는 거리였어요. 재키가 있던 집과 식당 자리에는 교회가 생겨 있었어요.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책도 읽을 수 있고, 여행도 다니고 인생을 그럭저럭 누리며 살았는데 재키는 어떻게 지냈을지 정말 궁금해요. 좋아하는 산책을 마음껏 했을지, 맛있는 간식을 많이 먹었을지, 나이 든 재키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