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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쉬 May 08. 2024

아빠를 닮아 있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초등학생인 아들이 학교에서 만들어 온 종이를 예쁘게 접어서 만든 멋진 샤넬 로고가 그려져 있는 가방과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나에게 건넸다. (엄마가 명품 백이 없는 것을 아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편지를 읽어 보니,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아들의 글을  읽고 나니 왠지 나도 어버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하게 된다.


나도 어릴 때 부모님에게 아들이 쓴 편지처럼 항상 그렇게 썼던 것 같다.

"낳아 주시고, 잘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뻔한 말이지만 어릴 때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는 이렇게 어버이날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지금도 나의 부모님에게 아니 살아계시는 어머니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나?

낳아주시고, 잘 길러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정말 감사한 마음이 있긴 있는 건가?

먹고살다 보니,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형식적이지만 이런 표현도 잊어 먹고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아버지는 저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어요?

욱해서 했던 말이 30년이 다 되어가도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그때는 알아서 내가 큰 것 같고 부모님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친구들은  사달라는 것도 다 사주고, 좋은 환경에 너무나 부유하게 사는데

나의 부모님은 왜 이리도 가난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사춘기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사춘기 시절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낳고 지금은 고등학생과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부모가 되어버렸다.


사춘기가 된 아이를 가진 부모.


올해 고등학교를 입학 한 딸아이는 최근에 친구들과의 관계로 굉장히 힘들어한다. 친구들과 오해가 생기면서 그들로부터 소외된다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갖고 있다.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느 날은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욱해서  "학교를 그만 다닌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어."," 내가 너한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어? 그게 아니잖아. 그냥 학교만 다녀"라며 딸에게 화를 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나에게 화를 내면서 왜 아이에게 화를 내냐며 위로를 못해줄망정 아이에게 상처를 주냐며 딸의 훈육이 부부 싸움으로 번져버렸다.


나도 처음에는 딸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공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과거 어릴 때 고지식한 아버지로부터 받은 느낌과 똑같이  나의 딸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혼 내키기만 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었다. 매일 훈육만 하셨던 아버지가 미웠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아들이 상처받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나를 달랬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내가 아빠가 돼서 똑같이 하고 있었다.

공감보다는 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반대로  아내는 딸을 어떻게든지 상처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공감하면서 위로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마도 딸은 나에게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빠는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어?

맨날 혼 내키기만 하고.

아빠 싫어! 과거 내가 똑같이 했듯이 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과거 나의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내가  사춘기 때 제일 싫어했던 고지식한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에휴~~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낳아주시고 길러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아들이 써준 편지처럼 아빠로서 잘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현재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살아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걸까


오늘은 아들로서, 아빠로서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머쉿게 살고 싶은 - 머쉬





PS. 어른이 돼서 본 나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식들을 사랑하셨고 위대하셨다.

 서른한 살의에 홀로된 할머니는 아버지를 어렵게 키우셨고 형편이 어려운  아버지는 국민학교 밖에 나오지 못하고 농사꾼이 되셨다.  남의 땅을 소작하면서 돈을 모아서  중학교 때 육 남매를 서울로 전학시켰다.

나의 국민학교 졸업 동기 중에 유일하게 나만 중. 고등, 대학교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S-IiArG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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