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세상이 핑 돌았다.
눈앞에 있던 세탁기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는데, 내 몸이 아니라 집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오 분쯤 지나 정신을 차린 나는 낯선 어지러움에 크게 당황했다. 둘째를 낳고 한동안 빈혈로 고생한 적이 있었기에, 또다시 빈혈이 찾아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침대로 돌아가 똑바로 누웠다. 이럴 땐 누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똑바로 누웠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할 천장이 회전그네를 타는 것처럼 출렁이고 울렁거렸다. 눈을 감아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누워도, 왼쪽으로 돌아누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건 빈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았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증상을 듣고 눈동자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은 빈혈은 전혀 아니라며 이비인후과를 가보라고 했다. 기본 청력검사와 몇 가지 추가 검사를 거친 끝에,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여러 가지라고 했다.
스트레스, 햇빛 부족, 노화.
노화라는 단어에서 괜히 억울해져서 ‘아직 그렇게 늙진 않았는데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어지러워서 반박할 힘도 없었다.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들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지러움이 또다시 올라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동안 젊다는 이유와 특별히 아픈 곳 없다는 핑계로, 나는 내 몸을 꽤 성실하게 무시해왔다는 사실을.
내 삶의 카테고리에는 ‘운동’이라는 폴더가 없었다. 있다 해도 방치된 채 몇 년째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끼워넣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았다.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하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약국에서 집까지 약 20분. 나는 걸어가 보기로 결심했다.
걸을 때마다 땅바닥이 올라왔다 내려왔다 했지만,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기진맥진해서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내 삶에 새로운 카테고리가 하나 추가됐다.
20분을 걸어도 숨이 차던 체력이 30분을 넘어서고, 어느새 1시간을 가뿐히 넘겼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덜 무겁고, 쌓이던 피곤함도 조금씩 빠져나갔다.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건강이라는 건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몸은 아직 나를 쉽게 봐주지 않았다.
자다가 손가락이 욱신거려 깼다. 이불을 걷는 것도, 핸드폰을 잡는 것도 힘들었다. 다음 날 정형외과로 달려가 진단을 받았다. 가벼운 염증이지만 나을 때까지 손가락을 쓰면 안 된다며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다. 한 달간 물리치료는 덤이었다.
약국에서 마지막 약을 받으면서 약사 선생님이 말했다.
“탄수화물을 줄여 보세요. 염증 수치가 떨어질 거예요.”
“네.”
겉으로는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이 났다.
약사 맞아? 약을 팔아야지. 뜬구름을 팔고 있어.
평소 탄수화물 없이는 살 수 없던 나였다. 떡, 빵, 달달한 커피, 쌀밥. 모두 내 사랑이자 위안이었다.
그런데 걷기를 매일 해도 살이 빠지지 않았고, 손가락 통증도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약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모든 탄수화물을 끊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냉동실 가득 채워져 있던 빵부터 끊기로 했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아는 언니에게 건넸다.
돌아오는 길, 언니네 집에서 우리 집까지 빵집이 세 군데나 있었다.
투명한 창 너머로 화려하게 진열된 빵들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았다. 겨우 발걸음을 옮기자 또 다른 빵집이 나타났다. 호두식빵의 고소한 냄새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갈색 봉지를 든 사람들의 표정이 오늘따라 더 행복해 보였다.
저 대신 맛있게 드세요.
마지막은 단골 프랜차이즈였다. 자주 들르며 인사를 나누던 사장님이 분주하게 빵을 진열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텅 빈 냉동실을 한참 바라봤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성실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면서 집착은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 대신 손가락 통증이 사라졌다. 조심스럽게 집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을 수 있게 됐다.
약사 선생님은 뜬구름을 판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내 삶에는 번거로운 루틴이 몇 개 늘어났다.
아침에는 스쿼트를 했고, 식사후에는 치실과 치간칫솔을 사용했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미루고 싶었지만, 결국은 몸을 움직였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친정아빠가 떠올랐다.
운동과는 평생 거리를 두고, 술로 삶을 채우셨던 아빠. 파킨슨병과 당뇨로 하루에도 수십 알의 약을 드셔야 했다.
아프면 번거로움도 사치가 된다.
오늘도 아침, 침대 위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오늘만 쉴까.
하지만 결국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 치실을 사용하고, 몸을 움직인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아주 미약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완전 무장을 마친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오늘의 미해결 과제를 해치우기 위해 걷는다.
버거운 삶보다는
번거로운 삶이,
그래도 나은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