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단출하게 보내는 설...이웃, 가족과 함께 먹는 음식이 그립다
프랑스에서 맞는 설날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연히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간다. 프랑스 새해 맞이행사라고 하면 1월 6일 주현절(Epiphany)을 기념하여 갈레뜨 데 루아(Galette des Rois)라고 불리는 케이크를 온 가족이 다 같이 먹는 것 정도다.
하지만 매년 설날이 되면, 우리 가족은 설날 음식을 만들어서 지인들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나눠 먹었다. 한국 음식을 프랑스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이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라 이웃들을 집에 초대해서 같이 먹기도, 나눠주기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현재 프랑스는 일일 확진자 수가 평균 30만 명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초대할 수는 없어도, 새해 인사는 할 수 있지
▲ 도시코와 서로 새해 선물을 주고 받는 모습 도시코 집 앞에서 새해 선물을 주고 받았다. 그 뒤로 에펠탑이 보인다. ⓒ 모니카
우리 가족은 파리 15구에 위치한 한인 마트로 향했다. 이맘때쯤이면 한인 마트에는 설날 맞이 행사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올해는 팬데믹으로 인해 한인회 주최 설날 행사도 없는지 행사 포스터가 없었다.
떡국떡, 만두, 당면, 어묵, 김 등 우리 가족끼리 간단히 해먹을 만큼만 구매했다. 장을 본 뒤, 일본인 친구 도시코 집으로 갔다. 프랑스에 거주한 지 약 7년 정도 되는 그녀는 우리 가족이 프랑스에 초기 정착할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서로 도움도 주고 받고 가깝게 지내고 있는 지인이다. 설날이 되면 그녀를 집에 초대해서 함께 떡국을 먹었다. 올해도 집으로 초대해서 설날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조심스러웠다.
▲ 한국과 프랑스 식재료 한인 마트와 프랑스 마트에서 구매한 식재료를 가지고 한국 음식을 만들었다
ⓒ 모니카
그녀는 고향 일본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약 한 달 가량 새해를 보내고 최근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그녀의 집 앞에서 서로 새해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우리 가족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일본에서는 2월 3일에 콩을 던져서 악귀를 물리치는 세츠분이라는 행사를 한다고 설명하며, 오니 마스크와 콩을 줬다.
우리는 복을 가져오는 한국 복주머니와 초콜릿을 선물했다. 아이는 직접 꾹꾹 눌러쓴 손편지와 함께 선물을 도시코에게 줬다. 편지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본 아네(Bonne Année)'라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된 새해 인사가 적혀 있었다. 서로 새해 복을 기원하며,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그 다음, 우리는 이웃 로헝씨네 들러서 한인 마트에서 구매한 유자차 한 통을 선물했다. 김밥 등 한국 음식을 종종 만들어서 주면 로헝씨네는 한국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설날 음식을 나누고 싶었지만, 유자차로 대신했다. 프랑스에서는 유자를 뜨거운 차로 즐겨 마시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이색적이라며 좋아했다.
오이, 양파, 돼지고기, 당근 등 나머지 식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오뙤이(Auteuil)에 위치한 까르푸 대형 마트에 들렀다. 아시아 새해 명절 행사를 마트 한 켠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 식품을 진열해놓았다. 붉은색 등과 함께 전체적으로 빨간색으로 행사장을 꾸며놓았다.
▲ 프랑스 까르푸에서 한창 진행중인 설날 맞이 행사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국가 식품들을 판매중이다. 한국(Corée)이라고 적혀있다. ⓒ 모니카
프랑스에서는 한국, 중국,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의 새해(Le Nouvel An Lunaire) 명절을 축하하는 행사를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다. 프랑스 대표 냉동 식품점 피꺄(Picard)에서도 한글로 적힌 '아시아의 맛'이라는 테마로 아시아 국가 새해 명절을 축하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스르르 물러난 악귀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도 물러나길
▲ 설날을 맞이하여 간단하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는 가족끼리만 집에서 간단하게 떡국 및 탕수육, 잡채, 호박전 등을 만들어 먹었다. ⓒ 모니카
집에 도착해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족끼리만 먹을 거라서 간단하게 했다. 늘 멸치 우린 물에 소고기를 넣고 떡국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번에는 시판 사골 육수를 넣고 떡국을 만들어봤다. 애호박전도 조금 만들고, 오뎅을 넣은 잡채도 만들었다. 탕수육도 집에서 만들었다. 돼지고기에 전분 가루를 묻혀서 튀겼다. 오이, 당근, 버섯, 파인애플을 넣은 탕수육 소스도 직접 만들었다.
한국에는 짜장면, 탕수육, 짬뽕 등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지만, 이곳은 배달해주는 중국집이 없다. 평소 삼시세끼 밥을 하는 것이 힘에 부칠 때면 한국 배달 음식이 그리웠다. 떡볶이, 김밥, 순대 등 분식으로도 한 끼 든든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한국이 그리울 때가 많다.
우리는 김밥, 떡볶이, 김말이 등 모두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설날이 다가오니 맛있는 한국 음식이 더욱 그리워졌다. 프랑스 전분 가루, 유기농 밀가루, 게랑드(Guérande) 소금, 파리 버섯(Champignon de Paris), 에쉬레 버터(Échiré le Beurre de France) 등 아무리 프랑스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들 한국 고향의 맛을 낼 수는 없었다.
만 5살 아이에게 설날에 대해 알려줬다. 설날의 의미와 설날에 먹는 음식인 떡국에 대해서 설명했다. 떡국을 먹는 것은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고, 떡국떡의 모양이 동전 모양과 흡사해서 부자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듣고 나자, 아이는 떡국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국물까지 다 먹고 그릇을 비우자 "엄마! 나 부자야. 나 이제 6살이야"라고 외쳤다.
이전에는 만두를 잘 먹지 못했는데 이제는 만두가 너무 맛있다며 혼자 다 먹겠다고 했다. 잘 먹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잡채도 입에 잘 맞지 않는다고 했던 아이였는데, 한 해 두 해 커가면서 못 먹던 음식들도 하나 둘씩 잘 먹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이렇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양가 부모님들께서 직접 보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점이 늘 아쉬울 따름이다.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렸다. 화상 통화를 했다. 화면으로 세배도 드렸다. 비행기로 12시간 걸리는 머나먼 이국 땅에 있지만, 핸드폰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대다.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 설날을 보내는 것이 팬데믹 시대에 어색하지 않는 일상이 되어버린 듯했다.
다음날, 신랑은 악귀를 의미하는 오니 가면을 썼다. 아이는 마스크 쓴 아빠를 보더니 소리치며 콩을 던졌다. 그러자 악귀는 스르르 물러갔다.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함께 썩 물러가길 바란다. 내년 설날에는 주변 이웃들과 함께 음식도 나누고, 집에 초대해서 함께 음식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