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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Feb 10. 2022

자연스러운 감정을 잘 표현하고 계신가요?

나의 감정을 알며, 적절하게 표현하며 살아가기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동화책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그림 속 나의 첫 감정(Mes premières émotions dans l'art)'


책 표지 /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Le Baiser). 핑크빛 사랑


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성인인 내게도 필요한 책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정을 적절하게 잘 표현하며 지내고 있는가? 그런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테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면 울어도 울지 말아야 하고, 화나거나 짜증내면 혼나고, 분노를 적절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수 있다. 공감력이 뛰어나고, 아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편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표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지금 내가 슬픈 건지, 화나는 건지, 외로운 건지, 아픈 건지, 기쁜 건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해서 남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상대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서, 습관이 되지 않아서, 체화되지 못해서. 어릴 적에 울면 울지 말라고, 화나면 화내지 말라고 어른들한테 교육받아서. 


자연스러운 내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어른이 되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반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슬픈데 애써 웃음 짓기도 하고, 화가 나는데 꾹 참거나, 되려 반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화는 나쁜 거라고 배우면 감정을 드러내기 싫어서 감춰버린다. 그 화는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자신을 더욱 해치기만 할 뿐이다. 


프랑스에 살면서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살 때는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내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다. 부당한 상황이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연습하지 못해서 안에 화만 쌓였다. 프랑스에 살면서 내가 내 감정을 소중히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는 일이 한국 사람에 비해 적은 편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불쾌하면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부러웠고, 나도 조금씩 변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적절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울면 울지 말라고 하거나, 화내고 짜증내면 혼을 내면 안 된다. 아이 감정을 부모가 잘 받아줄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응석받이처럼 다 받아주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고유한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준 뒤, 감정을 어떻게 적절하게 타인에게 표현하며,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말로 알려줘야 한다. 


책의 각 페이지마다 그림이 있고, 각 그림에서 보이는 감정을 설명했다. 사랑을 표현한 그림에는 사랑에 따른 감탄사 또는 의성어를 표현했다. 동시에 감정마다 색깔을 붙였다. 핑크색 사랑, 회색 슬픔, 푸른 공포, 빨간 수치심, 노란 기쁨, 녹색 질투, 검정 분노... 감정에 어울리는 색깔도 참 적절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감정이란 것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책 머리말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이나 신체적 상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감정을 알고, 배워야 합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그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작품마다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의성어, 색상, 표현 등을 통해, 아이들이 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이는 어떤 사건 또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장 강한 감정을 나타내는 기쁨, 분노, 놀람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래 지속되는 감정인 사랑, 편안함, 수치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신체 상태와 관련된 감정인 따뜻함, 피곤함, 통증 등을 배웁니다. 클림트, 뭉크, 피카소, 반 고흐 등 그림을 통해 아이가 자신의 감정 및 신체적 감정의 주인이 되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Adriaen Brouwer의 쓰디쓴 한 모금(Gorgée amère), 녹색 맛없음 / 반 고흐의 울고 있는 노인, 회색 슬픔.,


이 시기 아이들은 공부보다 다양한 감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줄 알아야 편안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과연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인가? 타인에게 내 솔직한 감정과 기분을 적절한 언어로 잘 표현하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화나도 화내지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하다 표현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쌓이고 쌓여서 한 번에 폭발한 적도 있다. 이건 아닌데 싶은 상황에서도 무조건 참기만 했던 적도 있다. 때로는 내 감정과 반대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편안하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억지로, 반대로, 가식적으로 살아가면 자신도 상대도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어릴 적에도 내 감정을 그다지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아이는 나처럼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라면 아이가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 나는 평소 아이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알아차리며, 다룰 줄 알도록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려고 한다. 아이가 화가 난 상태면, 지금 화가 나는구나 하고 공감해준다. 왜 화가 나는지 물어본다.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화가 조금 누그러졌을 때, 차분히 알려준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어느 정도 아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듣기 시작한다. 


다음번에는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 적절한 것인지 학습이 되어 있는 아이 모습을 발견한다. 슬퍼서 울고 있으면, 울게 놔둔다. 아이 등을 쓰다듬어주면서 그 슬픔에 공감해준다. 슬픈 이유를 물어보고 함께 생각해본다. 왜 슬픈지, 무엇이 너를 슬프게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위로를 받는다. 기쁘면 맘껏 하하하 소리 내어 웃어본다. 아이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뭉크(Edvard Munch)의 절규(Le Cri), 시퍼런 공포 / 까롤루스 뒤랑(Carolus-Duran)의 웃는 사람들(Les Rieuses), 태양빛 노란 기쁨


"우진아, 세상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어. 기쁘고, 사랑하고, 편안한 감정도 있지만, 화나고, 무섭고, 질투 나고,  슬픈 감정도 있어. 이 모든 감정은 다 소중한 것이야. 화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화나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슬픈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런 나의 감정을 잘 알고, 적절하게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해. 화가 났을 때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화가 나고, 불쾌하다고 상대방에게 적절하게 표현하길 바라. 엄마는 불쾌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꾹 누르고 참다가 내 몸만 아픈 적도 있단다. 기쁜데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기도 했어.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척했고, 내 감정을 많이 속이면서 살아왔던 거 같아. 근데 이러면 안 돼. 기쁘면 맘껏 기뻐하렴. 슬프면 맘껏 슬퍼해도 돼. 질투도, 수치심도 모두 자연스러운 너만의 감정이야.” 


아이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했다. 특히, 맛이 없어서 찡그리는 표정의 그림을 보고 재밌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림을 보고 따라 하기도 하고, 같이 감탄사를 말해보기도 했다. 그림도 보고, 프랑스어 공부도 하며, 다양한 감정도 표현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며칠 전, 아이 유치원 담임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Demain après-midi, une intervenante viendra dans la classe pour nous faire partager un atelier sur les émotions. (내일 오후, 감정에 대한 워크숍을 외부 강사가 와서 아이들에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날 오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감정에 대해 내게 얘기해줬다. 어떤 여자 선생님이 오셔서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화난 표정, 슬픈 표정, 웃긴 표정, 기쁜 표정, 부끄러운 표정, 미안한 표정. 매우 다양한 감정이 얼굴로 표현됐다고 했다. 아이들도 함께 따라 했나 보다.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임을 배우는 시간이 됐을 것 같다. 마지막에 선생님은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사용해서 직접 연극을 보여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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