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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27. 2022

별거가 별거 아닌 프랑스 가정

이혼 가정이라도 아이들은 행복하다

아이는 2022년 9월 1일부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나서부터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 하루에 한 번 꼴로 메시지가 올라왔다. 유치원 3년 동안은 숙제가 없었기 때문에 숙제 관련 메시지가 없었지만, 초등학교부터는 숙제가 매일 있다. 


'오늘 학교에서 내 준 숙제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9월 초부터 약 3주간은 매일같이 이런 메시지가 올라오길래, 숙제는 노트에 다 적혀있는데 왜 모를까 의아했다. 주로 3명의 엄마들이 주로 물었다. 엄마들은 친절하게 숙제를 서로 알려줬다.


9월 말 정도 되었을 때, 아이를 씻기다가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S가 그렇는데 아빠가 집에 없대. 아빠는 모로코 가면 만난대."

"I은 엄마랑 아빠가 같이 안산대. 엄마한테 갔다가 아빠한테도 갔다가 그렇게 산대. 최근에 그렇게 하기 시작했대."

"D도 아빠가 없대."


그렇고 보니 주로 숙제 관련 질문을 많이 하던 I와 D의 부모들이 생각났다. I와 D엄마는 남편과 따로 살기 때문에 숙제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뭔가 애로 사항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생각해보니 S엄마는 3명의 자녀를 혼자서 키우는지, 여태껏 남편을 본 적이 없다. 이 외에도 별거 및 이혼 가정이 많이 있는 듯 보인다.


어느 날, N의 엄마가 단체 채팅 방에 메시지 하나를 올렸다.


"학부모 선거 투표용지가 각 가정 당 1개인가요? 아니면 엄마 아빠 각자 1개씩 인가요? 제가 현재 별거 중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메시지에 ‘On est 2 parents séparés’(우리는 따로 사는 2명의 부모입니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별거인지 이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헤어져있는 상태이다. 이런 문자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이에 대해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 않게 답변을 했다.


한국은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는데, 학교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이혼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궁금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혼에 대해 여전히 좋지 않은 시각이 있는 듯 보였다. 아이들도 초등학교에서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말하는 것을 꺼리는 듯 보였다. 굳이 물어보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부모들도 이혼 및 별거 상태에 대해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자녀들도 학교에서 자신의 부모님들이 따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숨기지 않고 친구들에게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다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모여서 각자 자신의 가정환경에 대해 말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별거 또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 모습이 늘 밝았다는 점이 참으로 놀라웠다. 부모가 이혼했다고 해서, 편부모 가정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우울하거나 슬퍼 보이는 기색 없이 해맑고 밝은 모습이었다. 특히, S는 늘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다. 그래서 아들의 입을 통해 S네 별거 사실을 들었을 때 꽤나 놀랬다. I도 개구쟁이처럼 늘 밝게 웃고 다녔고, N도 매우 쾌활한 아이다. D엄마는 늘 밝고 쾌활하게 인사를 해서 그런 상태인지 몰랐다.


전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높은 추세다. 세계 인구조사의 2021년 국가별 이혼율 자료에 따르면, 세계 평균은 1.7(1000명 당 이혼 건수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한국은 2.1이며, 프랑스는 1.9이다. 양국 모두 평균을 넘었다.  프랑스에는 팍스(Pacs)라고 해서 시민연대 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란 뜻의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결혼과 비슷한 세금 및 보호자 혜택을 누리지만, 이혼을 하면 재산 분할 등 이혼 행정 절차가 결혼보다 비교적 간소하다. 결혼보다는 여러모로 자유로운 가족 형태이기 때문에 팍스를 선호하는 커플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출산율도 높아졌다. 


프랑스 복지시스템 중 하나인 가족수당 기금(CAF/Caisse d'allocations familiales)은 저소득층 및 한부모 가정을 위해 자녀 양육 및 교육 보조금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서 자녀 양육비 부담은 덜한 편이다.


어느 날, 동네 도서관에서 동화책을 고르다가 눈에 띄는 제목을 가진 동화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아빠네와 엄마네(chez Papa et chez Maman)', 부제가 '나의 두 집(Mes deux maisons)'이다. 영국 동화 작가 멜라니 월시(Melanie Walsh)의 '엄마와 살고 아빠와 살기(Living with Mom and Living with Dad)'의 프랑스어 번역본이다. 


이 책을 같이 읽으면서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말해줬다. "우진아, 이 책 내용처럼 어떤 집은 아빠와 엄마가 따로 살기도 해. C처럼 말이야. 엄마 아빠가 따로 살 수도 있는 거야."


▲ "아빠네와 엄마네"라는 프랑스 동화책 영국 동화작가 멜라니 월시의 프랑스어 번역책이다. 나의 두 집이라는 부제가 옆에 적혀 있다. ⓒ 모니카

▲ 2018년 결혼과 팍스 핑크색은 이성간 결혼, 하늘색은 이성간 팍스를 의미한다. 결혼은 감소했고 팍스는 증가했으며, 2017년 결혼과 팍스의 비율이 비슷하다. ⓒ 프랑스 통계청


책 속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명료했다. 책 속 문장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엄마와 아빠는 더 이상 같이 살지 않아요.
때로는 핑크색 문이 달린 집에서 엄마와 고양이랑 함께 살아요.
때로는 아파트 높은 곳에 있는 아빠 집에서 살기도 해요.

(중략)

내가 학교에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엄마와 아빠 둘 다 나를 보러 왔어요.
         
엄마나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전화를 해요.
그럼 기분이 한결 좋아져요.
엄마와 아빠는 나를 많이 사랑해요.
다른 가족들처럼요.


책을 덮으니, 뒷면에는 '아이들과 부모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은 책'이라고 적혀있다.


이혼 가정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가정환경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집과 같은 가족도 존재하는구나'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같다. 부부가 함께 사는 집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혼 가정의 친구들을 편견 없이 바라볼 것 같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나서, 부모가 따로 사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는 이런 집도 있고, 저런 집도 있구나'라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편견 없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


프랑스에 살면서, 거리낌 없이 자신의 부모가 이혼했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환경을 언급했다. 또한, 아이 학교 학부모 중에는 이혼 가정 및 재혼 가정이 적지 않다. 동성 부부도 학부모 모임에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아이와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재혼 가정 또는 한부모 가정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 형태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냈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 방송 또는 뉴스 기사 등을 접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이혼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린이 동화책에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어야만 화목한 가족이 아니라, 부모가 따로 살아도 아이는 얼마든지 행복하고,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으며, 성장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동화책도 많이 출판되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이혼을 나쁘게만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 가정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이혼 가정 아이들도 부부가 함께 사는 가정의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들이다. 단지 부모님이 어떤 이유로 인해 따로 살뿐이다. 이혼 가정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와 학교에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바라봐주면 좋겠다.


▲ 엄마네 집에 있는 아이의 방 벽이 노란색이다. 책에 들어간 그림들이 대체적으로 밝다.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살아도 아이는 밝다. ⓒ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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