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교육을 중요시하는 프랑스
영어책을 몇 권 사려고 동네 서점에 갔다. 영어책이 없단다. 한국에 갈 때마다 크고 작은 서점에 가보면 아이들을 위한 영어책이 없는 곳은 없다. 그런데 파리에는 영어책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파리 생제르망에 가면 지베르 존(Gibert Jaune)이라는 대형 서점이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큰 서점에 가야 영어책을 구매할 수 있다. 한국은 영어 열풍이 확실히 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영어보다 자국 언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린 시절에는 모국어를 더욱 중요시한다.
프랑스어가 20세기에는 글로벌 언어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리 엄마 세대들이 대학생이 당시에는 불문과가 매우 인기 있는 과였다. 국제기구에서도 프랑어가 국제 언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영어의 부상으로 글로벌 언어로서 자리는 내주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국민들은 자국어 부심이 크다. 그래서인지 유럽 국가 중에서 영어 사용 능력이 비교적 떨어진다.
프랑스인들 중에서는 영어를 알면서 일부러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실제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영어를 못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아주 당당한 사람도 있다.
행정 업무 등등으로 전화 통화를 할 때, 나는 먼저 "실례지만, 영어 할 줄 아세요?"라고 물으면, 10명 중 7명은 "아니요"라고 당당히 말한다. 때로는 "아니요!"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데, '난 그딴 언어는 몰라. 아니 몰라도 돼!'라고 하듯이 매우 힘주어 크게 말한다.
프랑스에는 Brocante 또는 Braderie라고 불리는 중고 물품을 내놓아 파는 벼룩시장이 도시 곳곳에서 자주 열린다. 나는 이곳에 가서 처음으로 아이 영어책을 샀다. 중고품이지만 상태가 괜찮은 것들만 내놓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이곳 벼룩시장에서 영어책을 5권 정도 구매했다.
프랑스에는 크고 작은 성당이 수없이 많다. 성당 안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매일 오픈을 하며 낡아 보이는 오래된 책도 아이들은 좋아하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조그만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는다. 크기도 작고, 책도 오래되어 보이지만 아이들은 이곳에서 손때 뭍은 책을 즐기고, 심지어 대출 시스템도 있어서 몇 권씩 빌려가서 집에서 읽는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어린 우진이를 데리고 멀리 나갈 수가 없어서 이곳 성당 어린이 도서관을 자주 찾아갔다. 매우 작은 어린이 도서관이지만 오래된 책 냄새와 꼬깃꼬깃한 손때 뭍은 동화책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모두 프랑스어 책이다. 영어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은 없다. 만 5세 반 담임 선생님께서는 영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매주 금요일 오전 1시간 정도 영어 수업 시간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영어 노래를 틀어놓고 즐겁게 노래 부르는 것이 다였다.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이 있는지 싶어서 주변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이 나이 때에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학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간혹 영어를 가리키는 가정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아이는 올해 9월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영어는 큰 비중을 두지 않은 듯 보였다. 주로 프랑스어를 중점적으로 배우고 있다. 이곳은 선행 학습이라는 것이 없는 편이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본격적으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