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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18. 2022

말보단 경험

스스로 경험하고 깨닫기

루비비통 재단 버질 아볼로 전시가 한창이다. 건축물 지하 바닥에는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데, 이 전시를 위해 커다란 공기를 넣어 만든 붉은색 성을 설치해놨다. 첫날은 입장 불가였는데, 둘째 날부터 입장 가능해졌다. 지난 금요일, 유치원에서 아이를 픽업한 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한테 “루이비통 재단에 커다란 미끄럼틀이 설치되었는데 가볼래?”하고 물으니 가겠단다. 웬일로? 집을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는 근처 마트도 들리기 싫어했다. 잠깐이면 된다고 계란 한 판만 사고 가자고 하면, 싫다며 바로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였는데, 미끄럼틀이라고 해서 그런지 좀 걸어가야 하는 곳에 가겠단다. 마침 신랑도 일이 일찍 끝나서 가족이 다 같이 가기로 했다. 날씨가 좋아서 걷기 좋았다.


지하로 내려갔다. 물 위는 거대한 붉은색 루이비통 로고가 새겨진 성이 있었다. 안전을 위해 인원 제한을 뒀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갑자기 어떤 한 남자가 "이 아이는 키가 작아서 안될 거예요. 우리 아들도 안된다고 해서 다시 돌아갑니다. 참고하세요."라며 내게 말했다. 보니까, 우진이보다 큰 형이었다. 나는 말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안내원한테 찾아가서 직접 물었다. 안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옆에는 150미터 이하는 안된다고 팻말을 써붙여놨다. "저랑 같이 들어갈 테니, 딱 한번 안될까요? 이것 때문에 일부러 왔어요. 제가 잘 볼게요." 안내원은 규정이라 안된다고 했다. 잠시 다른 안내원과 의논하는 듯했는데, 결국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돌아갔다. 안에 살짝 보니,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많았다. 이까지 왔는데 한번 들어갔다 와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아이가 더욱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바로 나왔다.


아이는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어른들이  안된다고 하는지, 엄마가 자기를 위해 한번  부탁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쉬워했지만, 어쩔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서운한 마음을 아빠와 함께 놀이터에서 노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는 집에 먼저 들어와서 저녁 준비를 했다. 부자는 집에 들어왔고, 둘이 샤워를  , 저녁을 먹었다.  먹고 나서, 우진이가 갑자기 "엄마,  우유 먹고 싶어. 우유 주세요."라고 했다. 우유를 마시면 키가 큰다는 말을 평소 했었다. 그는 키가 빨리 커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듯했다. 우유  컵을 가득히 채워줬고  마셨다.  달란다.   째다. 다음 ,  우유를 달라고 했다. 오늘도 계속  대신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평소에 우유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거나 즐겨 마시지는 는 아이였다. 본인이 엊그제 경험을 통해, 키가 크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고, 그럴려면 우유라는 것을 마시는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경험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유 마시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어떤 경험을 통해, 온몸으로 체험을 하고,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는 우유를 삼일 연속 스스로 많이 마시는 아이를 보면서,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가 곁에서 이것 좋으니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말을 하기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래서 아이와 여행을 많이 다니면 좋다고 하는 가보다. 이것저것 경험해보게 하고, 온몸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경험을  했으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금요일  제한 사건을 함께 겪고 나서 아이한테 아무런 말도  했다. 단지, "우진아, 키가 작아 안된다네. 빨리 크자. 그럼  거야."  말만 했다. 만약 내가 거기서 ", 우유 많이 마시라고 했잖아. 우유 많이 마시자.  우유 마시라고    마시고. 우유 많이 마시고 빨리 크자"  부연 설명을 장황하게 했다면 우진이는 우유를 마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잔소리처럼 듣고,  반항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내 어릴 적 시절을 되돌아보면,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학교에서 두 달 동안 학교에서 진행했던 호주 어학연수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보내준 것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고, 영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 당시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그곳에 딸을 보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라고 보내셨을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피아노에 매진하다가, 6학년 때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고, 엄마는 그간 배운 게 아쉬워서 중학교 3년 내내 다른 선생님을 내게 붙여서 피아노를 계속 치게 하셨다. 결국 중3 때 피아노를 안치겠다고 마지막으로 선언했지만. 근데, 중1 때 엄마가 피아노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시켜주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해외라는 곳에 가보았고, 나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게 낯설고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세계와 연결되려면 영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2달 후, 한국에 와서 그때 만난 친구들과 영어 펜팔을 하는 등 영어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키웠다. 영어 공부가 재밌어서 영어 말하기 대회에도 스스로 신청해서 많이 나갔고, 상도 많이 받았다. 그 당시 엄마는 영어 공부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영어는 고사하고 공부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어 많이 아쉬워할 뿐이었다. 중학교 때에도 피아노를 계속 했으면 하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 피아노 연습해라는 말은 수도 없이 하시면서 공부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는 피아노는 치기 싫었고, 공부, 특히 영어 공부는 하고 싶었다. 내가 청개구리 기질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아니, 인간 본성이 이렇지 않을까. 옆에서 자꾸 하라고 말하면 되려 하기 싫은 마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괜히 그것에 관심이 생기는 법. 말보다는 경험이다. 나는 호주에서 새로운 삶과 사람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통해 내면에 무엇인가 새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근데 부모님은 내게 호주 경험에 대해 묻지 않았다. 보내고, 경험하게 하고 그것으로 끝. 그 경험을 소화하는 것은 경험자 스스로이 몫이다. 그때 엄마가 "호주 갔다 오니 어때? 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겠지? 영어 공부해라."그런 말을 했다면 나는 되려 영어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우진이의 키 제한 경험도, 나의 호주 경험도 모두 아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 변화를 스스로 보였다. 아이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경험을 했으면 그것으로 부모 역할은 끝이다. 자꾸 옆에서 부연 설명과 잔소리 같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까지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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