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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21. 2022

아이 마음 헤아리기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고 바라보기

어제저녁 9시, 대선 토론이 있었다. 결선에 오른 두 후보 마크롱과 마린 르펜의 토론. 나는 대선 토론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프랑스 대선 토론 분위기, 후보들의 표정, 말투, 어법, 패션, 토론 진행자, 토론 방식 등을 보고 싶어서 1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매일 보는 채널을 한창 시청 중이라서 부탁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유튜브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한창 보고 있는데, 9시 10분 정도 됐을까, 아이는 신랑과 함께 샤워를 하러 샤워실에 들어갔다. 옳거니! 샤워하는 동안만이라도 잠깐 TV로 크게 봐야겠다. 한참 TV로 대선 토론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거실에 오더니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다른 채널로 바꿨어!" 자기가 보고 있던 것을 다른 곳을 옮겼다고 난리 난리였다.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자기 딴에는 그게 너무 서글펐나 보다. 오랫동안 마음이 상해있었고,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샤워하는 동안만 봤을 뿐이라고 설명을 했다. 기분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울고 마음이 토라져있었다. 키즈 채널로 돌리니 다행히 광고 중이었다. "거봐! 광고잖아. 광고 중이라서 내가 그랬던 거야. 광고를 계속했어." 약간 누그러지는 듯해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20~30분 정도 흘렀을까... 아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나와 함께 다른 채널을 함께 웃으면서 봤다.


다음날 아침, 그렇니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오늘 아침.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다 말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광고도 좋아한단 말이야. 광고 보고 싶었단 말이야" 어제 일이 아직도 생각이 났나 보다. 그게 그렇게나 서글펐나 보다. "그래, 우진아. 다음부터는 엄마가 다른 채널 돌리지 않을게. 광고를 하고 있어도 안 돌릴게" 내 말에 아이는 마음이 금세 괜찮아졌다.


대게 어른들 시각에서 별것 아닌데 아이가 대성통곡하고 오랫동안 화내거나 삐져있으면 어른들은 처음에는 달래주다 시간이 흐르면 덩달아 화가 올라온다. 그러면서 "아니 무슨 이런 일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너 안보는 동안 본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너 오면 다시 채널 돌리려고 했어. 근데 왜 이런 걸로 30분 동안 울고 불고 이 밤에 옆집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등 부모도 인간인지라 아이한테 잘못했다고 여러 번 말하는데도 계속 울고불고 떼를 쓰면 부모도 스멀스멀 화가 올라올 수 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엄청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어릴 적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일인데 부모님은 그것을 과소평가하며 "뭘 그것 가지고 그래."하며 아이한테는 큰일을 어른들 눈에서 쉽게 생각한 적도 있다. 심지어 내가 성인이 되어서 어떤 일로 심란해있으면 늘 낙천적이고 외향적인 성향의 엄마는 "뭘 그것 가지고 그래. 괜찮아. 별것 아니야. 잊어버려."라며 쉽게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와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점점 엄마 앞에서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내가 볼 때는 이게 그렇게 큰 일인가 싶은데 타인은 큰일일 수 있다. 아이한테 자기가 보던 채널을 다른 곳으로 말없이 돌려놓은 것은 만 5세 아이에게는 큰 일이었던 것이다. 그럴 때 부모가 아이 마음을 끝까지 헤아려주고, 다독여준다면 아이 마음에 앙금이 남는 일은 없다. 또한 엄마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엄마에 대해 애착과 신뢰도 더욱 형성된다. 아이한테는 엄마가 부모가 전부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어린아이한테는 부모가 우주와 같은 존재다. 그런 부모가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로 다가온다. 나는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아이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우진아, 미안해. 마음 상했다면 용서해줘. 다음에 네가 샤워를 하러 들어가더라도 다른 채널 보지 않을게. 광고가 나와도 보지 않을게."라고 말했다. 오늘 아침까지 이어진 그 마음의 잔여물이 이제야 다 없어진 듯 보였다. 아이와 나는 웃으면서 서로 손을 잡고 유치원까지 걸어갔다.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도로 건너 저편에서 "그만해!(Ça Suffit)"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들려왔다. 목소리는 날 선 칼날처럼 매서웠다. 한 엄마가 자기 뒤에 멀찍이 서 있는 만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한테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모녀를 관찰했다. 엄마는 아이를 놔두고 앞에 걸어갔다. 아이는 엄마 뒤를 쫄래쫄래 간격 1미터를 유지하며 걸어갔다. 길을 건너 우리 모자 앞으로 왔다. 햇살 좋은 봄날 아침, 둘은 여전히 1미터 간격 사이에 냉기를 뿜으며 걸어갔다. 단 한 번도 엄마는 아이가 뒤에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엄마가 모퉁이를 돌자 아이와의 간격은 1미터 이상으로 벌어졌다. 유치원 앞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는 엄마를 놓칠세라 엄마가 들고 있는 가방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어린 여자 아이의 그때 심정은 그랬을 테다. '엄마, 같이 가. 나 엄마 놓칠까 봐 무서워. 나 손 잡아줘. 엄마가 화내서 무서웠어.' 이랬을 것 같다.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서 아이 내면을 들여다보자면 '엄마, 아까 소리쳐서 무서웠어. 엄마, 실은 엄마 사랑해. 엄마가 화내면 무서워. 엄마가 없어지면 나는 어떡해. 엄마가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어. 엄마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면 좋겠어. 엄마 내가 투정 부리는 것은 엄마를 사랑해서 그래. 엄마가 편안해서 그래.' 그럴 것 같다.


나는 끝까지 그 모녀의 결말이 궁금해서 발걸음을 재촉해서 계속 따라가 관찰했다. 여자 아이는 몇 번이나 엄마 가방 끝자락을, 엄마 손을 잡아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유치원 교문을 들어설 때, 엄마가 잠깐 한번 아이를 슬깃 쳐다봤는데 결국 손을 내주지 않았다. 많이 아쉽다. 다행히 유치원 입구에 아이 아빠가 서 있었고, 여자 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아빠 품에 와락 안겼고, 아빠는 아이를 들어 올려서 한참을 달래줬다. 아빠는 아이가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저 아이가 아빠와 헤어지는 게 아쉽고 그래서 그냥 아빠를 보더니 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그때 엄마의 표정은 한숨을 푹 내쉬며 정말 너란 아이는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많이 아쉽지만 자기 자식한테 그런 표정은 지으면 안 된다. 대게 길거리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할 때 엄마 또는 아빠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그냥 뒤에 놔두고 혼자 앞으로 걸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길거리에서 종종 목격했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때 아이 마음은 거의 공포에 가깝다. 고작 만 4~6살 아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화가 난다고 해서, 물론 엄마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끊임없이 길에서 울고 불며 소리 지르고 떼쓰면 부모도 진이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아이를 뒤에 혼자 놔두고 앞으로 저 멀리 가버리면 그때 아이는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는다.


누구는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고,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엄마는 무조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십 대 청소년은 또 다른 얘기다. 그때 그러면 그건 과잉보호라고 생각한다. 십 대가 되면 사리분별도 하고,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나가야 하는 식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 잘못을 아이 감정을 무조건 받아주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떼를 쓰면 그때는 다 받아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아이 입장에서 늘 생각하고 받아주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아직 여러 가지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때는 화를 내고 공격적이기보다는 이해와 사랑이 더욱 아이 발달에 도움이 된다. 이는 결코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하고, 애착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길이다. 또한, 이렇게 아이에게 화내거나 혼내지 않고 아이 입장에서 인내심을 갖고 바라봐줬을 때, 아이는 감정 발달에 더욱 도움이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하는 분도 계실 수 있다. 그럼 아이를 오냐오냐 버릇없이 키워야 한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다. 나도 아이한테 이런 것은 잘못되었고, 저런 것은 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아이가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때 바로 알려준다. 다만 차분하게 설명하고, 알려주면 된다. 그렇게 해도 아이들은 다 알아듣는다. 근데 버릇을 고치겠다고, 훈육이란 이름 하에 막 혼내면서 하면 안 된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려는 모습, 자신을 대하는 태도 등 아이 자신도 다 알고 있다. 말을 안 할 뿐이지 다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잘못된 거 같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다. 엄마가 말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앞선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자기가 잘못되고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울며 떼쓰는 것이다. 그리고 울며 떼쓰는 것도 엄마이고 아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부모가 아이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한다면, 아이는 그런 과정 속에서 여러모로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한다.


아이와 헤어지는 유치원 입구에서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아이는 씩씩하게 유치원 교실로 향해 혼자 걸어갔다. 늘 그렇듯이 나는 입구 유리창 밖에서 아이를 향해 활짝 웃으며 하트를 보냈다. 아이는 늘 뒤로 돌아서 나를 쳐다본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한동안 바라본다. 아이도 내게 늘 그랬듯이 하트를 마구 보낸다. 매일 이렇게 서로에게 하트를 보내며 하루를 잘 보내라는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낸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다. 아이가 마음에 아무런 앙금 없이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P.S 글에서는  거창하게 말하는  같지만, 사실 부족한게 많은 부끄러운 엄마입니다. 육아를 하면서 그때 그때 들었던 순간적인 감정과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붙잡아서 활자로 남겨 놓고 싶기도 하고, 글을 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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