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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Oct 27. 2022

자연 치유의 힘을 믿는 프랑스 사람들

면역력을 높이세요

해외에서 어린아이를 키울 때 무엇보다도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병원이다. 어린아이가 갑자기 열이라도 난다 싶으면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래서 해외 육아를 하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부분이 소아과 및 아동 응급실이다. 나는 파리에 첫 발을 내디딘 2017년 7월에 아이를 업고 파리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만 1살 정도였을 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벌에 쏘였다. 작디작은 고사리 같은 손은 금세 두 배로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순간 아이가 독에 의해 죽는 줄 알았다.


아동 전문병원인 넥케(Necker) 갔다. 응급이라고 했음에도 최소 1시간은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일  응급실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응급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대기실이었다의사를 겨우 만났고, 다행히 독성이 있는 벌은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돌리프란을 처방해줬다. 다른 약은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만 했다. 정말 괜찮아지는 의아했지만, 거짓말처럼 밤이 되자 붓기도 차츰 가라앉았다. 한국이었다면 냉찜질 팩이라도 줬을 것 같은데,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프랑스 국민 해열제 돌리프란 한 병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병원에 가려면 무조건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Mondoctor 또는 Doctorlib이라는 온라인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된다. 한국에서 자주 들었던 단어인 '랑데부'가 바로 예약에 해당하는 프랑스 단어이다.  병원뿐 아니라 식당 등 모든 곳에 가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소위 까르네 드 썽떼(Carnet de Santé)라고 불리는 아동 건강 기록 수첩이 중요하다. 이는 관할 시청에 가면 최초 발급을 해주는데, 어린이집부터 시작해서 모든 보육 시설 및 교육 기관에 다니려면 이 수첩이 매우 중요하다. 기관 등록 시, 이 수첩을 요구하며, 필수 접종을 마쳤는지 확인한다.


16구 모차르트 거리(Avenue Mozart)에 위치한 커다란 빨간 대문이 인상적인 소아과를 처음으로 찾아갔다.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한국의 깨끗하고 넓고 현대적인 인테리어 병원과는 달리 이곳 프랑스는 일반 거주 아파트에다 병원처럼 꾸며놓고 진료를 본다.


Cabinet라고 불리는 이런 개인 병원은 주로 의사 한 명이 예약 접수부터 안내, 진료, 수납까지 혼자 다 하는 경우가 흔하다. 내부는 일반 아파트 형태이며, 내부 시설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나는 한국과 홍콩에서 접종한 아기 수첩과 프랑스에서 발급받은 까르네 드 썽떼를 다 함께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프랑스 시청에서 발급받은 아기 수첩에다 한국, 홍콩에서 예방 접종한 내역을 하나로 모아주셨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아이는 콧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하더니 열이 났다. 한국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대부분 자상 한 편이었으며, 소아과에는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많이 있었다. 반면 이곳 프랑스 소아과는 어른들이 오는 병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무미건조했다. 테이블 위에 너덜너덜한 어린이 책이 몇 권이 덜렁 놓여 있고, 1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장난감 서너 개가 굴러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몸무게를 재는 오래된 바늘 체중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낡아 보였다.


할머니 의사 선생님은 아이 입 안과 귀 안을 살펴보더니, 이맘때쯤 많은 아이들이 겪는 일종의 감기 같은 것이라며 프랑스 국민 해열제 돌리프란을 처방해줬다. '이걸로 진료가 끝난 건가?' 아이는 39도에 육박하는 열도 나고 있고, 콧물도 줄줄 나는데 고작 일반 해열제 하나뿐으로 진료가 끝인가 싶어서 두 눈만 꿈뻑대며 다시 한번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예스였다. 다소 무서워 보이는 할머니 의사 선생님을 향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어 “항생제 처방해 주세요.”라고 애처로운 눈망울로 요청했다.


한국은 아이 병세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큰 편이고 이곳 프랑스는 병세가 느리게 호전되더라도 최대한 항생제를 쓰지 않고 천천히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국은 항생제를 사용해서 병세가 빠르게 호전되기를 바라는 편이다. 나도 한국에 살 때,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으면 병원에서 수액을 맞기도 했고, 약을 미리 먹기도 했다. 병원에 가면 항생제는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다. 아이도 열이 빨리 내리고, 완쾌해야 부모도 덜 힘들고,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있으며, 부모도 직장 생활에 전념할 수 있다.


프랑스는 아이의 병세가 지속이 되더라도, 열이 아직 내려가지 않아도 항생제를 쉽게 처방하지는 않았다. 해열제 먹으면서 물을 많이 마시게 하고, 많이 쉬며, 잠을 잘 자게 하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잘 먹고 잘 쉬면 낮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열이 나서 끙끙거리고 있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기 힘든 마음에 항생제를 복용해서라도 빨리 회복하게 하고픈 마음이 크다.


아쉽게도 프랑스는 아이가 서서히 낫더라도 약을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고 자연 치유하도록 했다. 자연 치유를 통해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가 조금 아파도 맡길 곳이 있다는 사회적 뒷받침도 한몫한다.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프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아기가 콧물 나고 기침해도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 아주 많이 심하면 못 보내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이집은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마시오’라는 말할 권리가 없다고 한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프랑스는 세 차례에 걸쳐 전국 봉쇄령을 시행했다. 한국에 비해 온라인 학습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프랑스는 아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갔다. 유치원 아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도 않았다. 질식사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유치원 아이들은 마스크 착용이 의무사항은 아니었다. 교실에 3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함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생활했다. 가족 중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자녀들도 덩달아 감염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유치원에 나왔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했던 2020년에서 2021년 당시, 유치원 아이들은 코로나 테스트도 이뤄지지 않았던 때라서 누가 코로나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학부모 중에서는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 대해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자녀들을 유치원에 학교에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쪽이 더 우세했다. 아이들은 면역력이 어른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2022년에도 코로나19는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프랑스는 위드 코로나 시대로 들어갔고, 유치원에서는 '해당 반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자녀들은 코로나19 자가 테스트를 하시고, 양성이면 학교에 5일 동안 보내지 마세요.'라는 메일이 올뿐이었다. 부모 중에서 자신의 아이를 자가 테스트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한국에 2021년 여름에 방문했을 당시, 코로나 확진자 동선 파악에서부터 테스트까지 매우 철두철미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다. 프랑스는 코로나19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은 편이었으며, 자가 면역체계를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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