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씨병

아이에게 고마움을 강요하지 말자

by 모니카

감사합니다라는 뜻을 가진 Merci를 프랑스 발음으로 하자면 멕씨인데, 표기는 대게 메르씨로 하는 것 같다. 어디선가 읽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메르씨(Merci), 씰부쁠레(S'il vous plaît), 봉쥬(Bonjour) 이 세 단어를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각 단어를 번역하자면, ‘감사합니다. 부탁해요(영어로 Please에 해당), 안녕하세요’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봉쥬!"

문장 끝에는 늘 "씰부쁠레!"

고마운 상황에서 언제나 "메르씨!"


아이 엄마들과 함께 플레이 데이트를 하다 보면, 자주 목격하는 상황이 있다. 내가 아이 친구한테 뭘 주거나, 아이가 친구한테 도움을 주거나 하는 그런 고마운 상황에서 늘 친구네 엄마는 자기 자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에게 봉쥬, 씰부쁠레, 메르씨 이 세 단어를 어릴 적부터 가르친다. 그중에서도 메르씨는 가장 많이 교육하는 것 같다.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 또는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하지?"


이 두 문장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아이는 그러면 바로 메르씨 하기도 하지만 부끄러워서 조그만 목소리로 하거나,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아이 엄마는 물러서지 않고 좀 전보다 다소 강한 어조로 말한다.


"뭐라고 말해야 한다고?"


대부분은 "누구야~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하지?" 정도로 말한다. 아이가 고맙다는 말을 하면 흐뭇하게 바라보고 상황 종료다. 만약 아이가 고맙다는 말을 안 하면 한번 정도 더 얘기하거나 또는 거기서 중단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아이를 교양 있는 프랑스인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말을 할 때까지 끝까지 받아내려는 몇몇 엄마들의 태도다. 내 주변 엄마들 중 특히 두 명이 메르씨병에 걸렸다. 이 두 엄마 모두 자신의 아이가 고맙다는 말을 할 때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지난 주말, 스웨덴에서 사 온 마시멜로를 아이 친구에게 선물로 줬다. 그 집 엄마는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라고 했고, 아이는 고맙습니다라고 조용하게 말했다.


시간이 흘렀고, 남은 마시멜로를 아이 집에 놔두고 갈게라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 엄마는 또 아이에게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한다고 했지?"라고 했다. 아이는 피곤한지 말을 안 했다. 나는 아이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처음에 고맙다고 말을 이미 했다. 한번 말했으면 됐는데 또 말하라며 그 엄마는 우리들 앞에서 아이에게 강요했다. 나는 "괜찮아요. 아까 했잖아요."라고 한 뒤,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는 잘 있어라며 얼른 일어섰다. 사실 그 엄마는 만나면 다소 당혹스러운 질문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고, 센스도 배려도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자신은 그렇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메르씨를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다른 엄마의 경우, 자신의 아이가 매우 교양 있고, 예의범절을 아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꼭 몸에 베개 하겠다며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말을 너무 과하게 가르치다 보니, 어떨 때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켜서 아이가 무안하다 못해 화가 나고, 그런 아이 태도 때문에 엄마도 덩달아 화를 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가 결과는 되려 안 좋아진 셈이다.


부모 자신이 행동이 바르고, 교양 있으며,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과 행동을 보이면, 아이는 부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아직 고맙다는 말을 우렁차게 자신 있게 세련되게 잘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속으로는 매우 고마워하고 있지만, 행동이 자연스럽게 매끄럽게 안 나올 뿐이다. 그런 말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할 것이고. 아이들은 점점 자라나면서 땡큐, 메르씨, 감사합니다.라는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 있다.


교양 있는 프랑스인을 키우겠다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조금 불편하다. 고맙다는 말은 본인이 우러나와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본인은 미안하지 않은데 미안하다고 말해라고 억지로 받아내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할 행동이 아니다. 아이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데, 입으로 말할 때까지 부모 자식 간에 대치하는 장면은 좋지 않다. 오히려 교양 프랑스인을 만들려다 애착 형성만 나빠지고, 아이를 더욱 망칠 수 있다.


자꾸 가르쳐서 입에 베개 하겠다는 뜻은 알겠지만, 어떨 때는 과하다 싶을 때도 있다. 다른 사람 앞이 아닌 집에서 둘이 있을 때 교육 차원에서 부드럽게 말하면 된다. 하지만 친구와 친구 엄마 앞에서 아이에게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클 것 같다.


상대를 매우 배려하고, 교양이 흘러넘치며, 저런 삶의 태도는 본받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엄마, 부모, 가족들은 실제 자신의 아이들에게 "누구누구야~ 이럴 때 뭐라고 해야 하지?"라고 한번 말한다. 아이가 말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을 작게 해서 안들리거나 안 할때도 있다. 그러면 부모는 한번 정도 더 말하거나 거기서 멈춘다.


반면, 메르씨병에 걸린 몇몇 엄마들은 남들에게 나는 이렇게 아이에게 메르씨를 가르치는 교양 있는 엄마야, 부모야라며 은연중에 자기 과시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들은 봉쥬~ 메르씨~ 씰부쁠레~라고 자신이 엄청나게 교양 있는 우아한 파리지엔인 것처럼 하지만 그저 말 뿐이다. 자기가 한 말을 안 지킬 때가 빈번하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실제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들은 계속해서 이 세 단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엄청나게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자신의 추함을 감추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관찰한 결과, 부모 스스로가 행동이 바르고 괜찮은 경우, 아이들에게 메르씨를 강요하지 않는 편이며, 부모가 언행불일치를 보이며 그다지 바르지 않은 경우, 아이들에게 메르씨를 강요하는 편이다.


아이에게 감사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강요하지 말자. 자식은 타인이다. 타인의 감정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 없다. 부모 자신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 아이는 알게 모르게 어느새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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