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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Apr 30. 2024

음악원 아이들의 연주회

자연스럽게 음악을 연주하고 즐겨요

그동안 프랑스 초등학교 연재에 글이 많이 뜸했습니다. 사실 매주 아니 매일 아이와 관련된 이야깃거리는 넘쳐났어요. 일상 속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그 외 활동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지만 제가 그동안 책 출간에 집중하느라 연재를 많이 못했습니다. 출간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있어서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초등학교 연재글을 쓰려고 합니다. 어제 저희 아들 우진이가 바이올린 연주회를 했어요. 어제저녁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연주회였습니다. 약 15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섰어요. 바이올린, 첼로, 성악, 피아노 이렇게 4개의 악기가 연주되었어요. 가장 많은 악기는 피아노였어요.


리허설을 할 테니 저녁 6시 30분까지 음악원으로 오라고 했어요. 4시 30분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와서 간식도 먹고, 좀 쉬었다가 옷을 갈아입고 음악원까지 걸어갔어요. 걸어서는 30분 정도의 좀 먼 거리이지만 저희 모자는 볼로뉴 숲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숲 속 안으로 들어가거든요. 손 잡고 걸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각을 잡고 대화를 하자가 아닌 그냥 걸으면서 새소리도 듣고 꽃도 보고 그러면서 한 마디씩 툭툭 내뱉습니다. 이럴 때 속 마음도 쉽게 말할 수 있지요.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 할 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조금 스트레스받았어"

"왜?"

"바이올린 연주 때문에"

"틀릴까 봐 걱정돼서?"

"응"

"우진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이미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틀리면 어때? 혹시 잊어버려서 멈추게 되면 그때 그냥 인사하고 내려와도 괜찮아. 음악은 즐기는 것이지 스트레스받아가면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엄마는 네가 바이올린 잘해도 사랑하고 못해도 사랑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스트레스받지 마."


아이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때문에 평소 늘 즐겁게 학교 생활했는데 오늘따라 약간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볼로뉴 숲을 걸어가면서 우진이는 내 손을 절대 놓지 않았어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최대한 바이올린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곧 떠날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리옹에 가서 작년에 갔던 그 베트남 식당에 또 가자. 호텔 로비에 있는 전자 게임을 또 하자. 리옹에 영화 박물관에 갈까? 샤모니에 정상에 올라가면 엄청 멋지다던데. 안시 호수를 또 보러 가네' 등 여행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며 즐거운 생각만 했습니다.


음악원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와 계셨어요. 가브리엘르 선생님 제자 중에서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학생은 3명이에요. 함께 모여서 연습을 했어요. 엄마들이 함께 왔고, 서로 인사를 했어요. 우진이는 15명 중에서 거의 끝 부분이었는데 다른 학생들의 연주를 보면서 그 긴장감은 낮아지는 것 같아 보였어요. "엄마, 나 잘할 것 같아?" "그럼. 우진이는 무대 체질이잖아. 작년에도 무대에서 가장 잘했잖아. 엄마가 늘 말했지.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돼"


드디어 우진이 차례가 왔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보지 않고 다 외워서 훌륭하게 연주를 마쳤어요. 리허설 때에도 집에서 연습할 때에도 악보를 잊어버리고 틀리기도 해서 무대에서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큰 기대를 안 하고 봤어요. 사실 우진이가 연주하다가 악보를 잊어버리고 멈출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가장 연주를 잘했지 뭐예요. 담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를 하는 우진이를 보고 있으니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주 중/ 연주 전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리에 앉더니, 제게 귓속말을 합니다. "엄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게 기분 좋아. 아이들이 내 연주를 듣는 게 나는 좋은 것 같아." 아이는 연주 전에 떨리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연주를 잘하고 났을 때 드는 뿌듯함과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연주를 듣고, 마지막에 박수를 쳐주는 것. 그래서 그 박수와 환호와 갈채를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응원과 박수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연주가들도 단 30분, 또는 1시간의 연주를 위해 그렇게 피나는 연습을 하는 것이겠지요. 과정은 힘들지만 연주 후에 오는 박수갈채 그리고 많은 지지와 응원이 연주자를 더욱 연습하게 하고 위대한 예술가로 되기 위한 힘이 되는 것이겠지요.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연주하는 아이들이 모두 자연스럽다는 점입니다. 부모님들도 자연스럽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이라면 이런 연주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빼입고 오는 편이지요. 좋은 구두를 신고, 좋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하고요. 제가 어릴 때 기억해보면, 연주회 때마다 친정 엄마는 제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혔어요. 미용실에도 가고 했지요. 부모님들도 좋은 옷을 입고 오시죠. 자녀들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영상을 사진으로 남겨서 SNS에 올리고요.


그런데 어제 현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아이들의 복장에서 이미 참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연주회인데 복장이 평소와 같았어요. 평소 신는 운동화, 바지, 후드티, 청바지 등 오늘을 위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입고 온 아이들이 거의 없었어요. 단 한 명이 정장을 입고 왔어요. 아시아인이었습니다. 우진이도 평소 입는 옷을 입었는데 그래도 나름 가진 옷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바지를 입고 갔어요. 평소 신는 운동화를 신고요. 여자 아이들은 좀 꾸밀 줄 알았는데 평소 입던 옷을 입고 왔어요. 단 한 명만 조금 괜찮아 보이는 원피스를 입었어요.


프로그램/ 음악원 건물 앞/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복장의 연주자들

부모님들도 자녀들이 연주할 때 영상을 찍는 분들은 많이 없었어요. 저는 영상을 찍었습니다.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죠. 지인들을 초대한 경우도 없었어요. 그냥 부모님 중 한 분 또는 양쪽 부모님 모두… 이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우진이 친구를 초대할까 했는데 월요일 저녁 9시에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부모님들에게도 무리일 거라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접고 저와 아이 둘이만 갔어요. 신랑은 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고요.


중간에 연주를 틀리는 학생들, 악보를 잊어버린 학생들도 많았어요. 그런 순간에도 아무도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연주자를 차분하게 기다려줬어요. 그리고 학생이 어떻게 해서든지 연주에 마침표를 찍고 인사를 할 때는 연주를 잘하는 학생들보다 더 큰 갈채를 보냈어요. 저도 박수를 두 배 이상 크게 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다고 응원을 보내는 것이죠.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실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은 모두가 지금까지 배운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인 것이었어요. 저는 맨 앞줄에 앉아서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을 하나하나 담았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각자의 악기를 배울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연습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음악이란 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지금 무대에 오른 이 순간 이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어릴 적 피아노 선생님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매우 많이 쳤어요. 그때 당시 피아노를 기계적으로 연습했어요. 피나는 연습을 했는데 과연 음악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요. 그냥 하라니까 하고, 대회 나가야 하니까 나갔어요. 못하면 혼이 나기도 했어요. 그렇게 음악을 배웠으니 음악이 좋을 리가 있을까요. 피아노는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물건과도 같았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보자 하는 그런 마음이었죠. 그런데 이 아이들은 그런 것 같지 않았어요. 솔직히 한국 아이들에 비해서는 잘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 이유는 연령에 비해 실력이 조금 낮았어요. 중고등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썩 잘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이 아이들이 부러워 보였어요. 못해도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고, 잘하지 못해도 좋아하니까 지금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하는 아이들 중에서 정말로 내가 이 음악이 이 악기가 좋다고 하면 금상첨화이죠.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악기를 억지로 하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친정 엄마도 내가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때 이런 기분이 들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아이가 무대에서 연주할 때 눈물이 핑 돌았어요. 감격의 눈물이었죠. 친정 엄마는 저를 무지 연습시켰지만… 그래도 딸이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드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우진이가 다음 학년에 올라갈 때, 바이올린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면 계속 시킬 생각이고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그만시킬 생각입니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집에서 혼자 복습하면 되니까요. 그렇다가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다시 시키려고 해요. 물론 음악원 과정이 중간에 그만두면 이어나가기 복잡해진다는 점이 있어서 이왕이면 꾸준히 음악원 과정을 순서대로 단계별로 밟아나가는 게 좋긴 하지요.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우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내가 왜 연주를 잘한 줄 알아?" "몰라. 왜?" "내가 연주하기 전에 기도했거든. 연주 잘하게 해 달라고" 집에 오는 내내 우진이는 기분이 참으로 좋아 보였습니다. 집에 와서도 즐겁게 숙제를 하면서 잠들기 전까지 기분이 계속 좋아 보였습니다. 아이는 자기 효능감이 한 뼘 더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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