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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an 23. 2021

정인이 사건을 보면서...

아이는 가장 귀한 손님인 것을...

정인 양 사건... 사람들이 분노했다. 분노를 넘어 오열했다. 시민들은 모두 함께 마음을 다했다.

현재 만 4살 반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로서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매일 일분일초 아이와 함께 숨 쉬고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세상 모든 부모들... 그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동학대 방지법에 관한 법규 개정,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다각도의 방안, 부모 교육 필요성 등... 그중 나는 학대의 대물림, 가정 양육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고 의견임을 미리 밝힌다.  


나는 평소 아이는 가장 귀한 손님이라는 육아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미 이전에 이와 관련된 글도 썼지만, 아이는 우리에게 온 가장 귀한 손님이다. 그래서 아이를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 아이는 내 소유물, 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또 다른 나도 아니다. 그저 단지 내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온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만의 인생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 아이가 비록 만 1살도 안된 갓난아기일지라도 아기만의 세계가 있다.


양모는 정인이를 물건 집어던지다시피 다루었고, 자기감정에 못 이겨 아이를 심하게 때려서 아이가 죽었다. 이런 반인륜적인 행위는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어떤 사고와 어떤 정신을 가졌길래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한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 참으로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거의 철학자, 연구자 수준이 된다. 아무런 교육을 하지 않은 그저 백지상태의 아이에게서 배려, 공감, 위로, 순수와 같은 단어를 발견하고는 나는 인간의 성선설, 성악설, 성무 선악설 중에서 성선설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 개인적으로 내린 바 있다.

  

나는 그 양부모란 사람의 삶에 한번 들어가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성선설을 근거로 보자면, 정인이 양부모는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는 이것이 어떻게 해석이 안된다.

그럼 그들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왔길래 이런 인간이 되었을까? 그들의 부모부터 알아봐야 한다. 양모의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한다. 양부의 아버지도 목사란다. 그럼 어떤 목사이고, 어떤 어린이집 원장이었을까?


여기서 기독교와 목사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좋은 목사님과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고(내 친한 친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많다), 선한 어린이집 원장님들도 많기 때문에 특정 종교 또는 직업을 일반화하여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목사는 대게 교회에서는 많은 신도들로부터 환영과 존중을 받는 위치에 있다. 예수님, 하나님 목소리를 대변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치달을 경우, 목사=하나님으로 여기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한다. 나는 오래전 학창 시절 교회를 다녔던 적도 있고, 해외 살면서 한인 교회 관련 이슈를 지켜보면서 직간접적으로 교회라는 집단에 대해 경험한 바 있다.

 "목사님 오셨어요~ 목사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목사는 신도들에게 대우를 받고, 인정을 받는 위치에 있다. 목사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기에 욕망, 욕구가 있는 존재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근데 직업 특성상 목사는 일반일들보다 스스로를 정죄하고 회개하기 쉽다.


그럼 목사가 이룬 가정은 어떤가? 대게 목사 가정이 실패하는 경우는 소위 '직업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대접받던 것을 집에서도 대접받으려고 한다. 신도들이 자기에게 깍듯이 대하듯이 가족 구성원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고, 즉, 가정이 또 하나의 작은 교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밖에서 신도 대하듯이 아내와 자식들을 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정죄한다. 선과 악을 철저히 구분하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신도 대하듯 정죄하고 회개하라고 한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가 쓴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흥행했는데, 그 책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충조판평 하지 마세요." 즉, 충고, 조언, 판단, 평가하지 말란 얘기다. 상대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근데 대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조언하고(나는 조언이지만 상대는 잔소리, 오지랖으로 받아들인다), 판단하려 들고, 평가하려(평가는 남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야 한다)한다.

그 목사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충조판평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기가 마치 하나님이고 예수님인 양... 가족 구성원들은 점점 스트레스가 쌓이고,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환멸, 멸시, 증오의 감정이 자라난다.   


목사 아내는 또 어떤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떠벌리면서 아이들을 학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정인이 양모의 입양 행위는 남들에게 나는 이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식, 허영, 허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목사님 딸, 어린이집 원장님 딸로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선한 모습,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을 수 있다. 내 안의 욕구, 감정, 화를 표출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급급하며 살다가, 쌓이고 쌓인 그 분노의 덩어리는 결국 나중에 시간이 흘러 자기 곁에 있는 가장 약하디 약한 자에게 다 쏟아내게 된다.


운영 중인 어린이집은 교회 소속이라고 한다. 대게 교회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을 꼭 만든다. 그래야 교회를 먹여 살리는 신도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재 작년, 프랑스에서 한인 교회 관련하여 큰 사건이 일어나서 방송에도 나왔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아이를 돌봐줄 테니... 란 말을 꼭 앞 세우며 아이 엄마들을 전도하곤 했다. 학대란 꼭 육체적 학대만을 일컫지 않는다. 그녀가 사모라는 위치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약자인 아이에게 다 쏟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걸 보고 자란 자녀들은 올바르게 자라날 수가 없다. 목사, 어린이집 원장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허레 허식, 허영, 체면, 분노, 시기, 질투 등이 자랐다. 그 자녀들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마가 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인이가 학대당해서 몸이 성하지 않는 것을 그 친정 엄마가 모를 리 없다. 며칠간 양모 친정 엄마가 아이를 돌봐줬다고 보도가 되었다. 어떻게 어린이집 아이들을 대하고, 어린이집 교사들을 대했을지 눈에 훤히 그려지지 않는가?


첫째 딸의 장난감으로 한 어린 여자아이를 샀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사 듯, 이것은 마치 배터리를 정기적으로 갈아주지 않아도 24시간 내내 움직이는 장난감을 샀다. 그 장난감을 마구 던지고 비틀고 가지고 놀았다(하물며, 장난감도 그렇게 대하지는 않는다!).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지만 동시에 축복이다. 아이란 존재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에 나를 되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를 통해 나도 미처 몰랐던 악마의 모습을 만날 수도 있고(정인이 양부모처럼), 내면 아이를 만날 수도 있고, 몰랐던 상처와 대면할 수도 있다.


아이는 너무나도 밝은 빛이기 때문에  안의 어둠을 드러나게 해주는 존재이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으면 그것을 마주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이는 대단한 존재이다. 마주하게  나의 어둠을 다른 약자에게 푸는 것이 아닌, 내가 나의 어둠을 안아주고 어루만져줘야 한다.


내가 늘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말이 있다.


"아이는 가장 귀한 손님입니다."

아이를 가장 귀한 손님처럼 대해야 한다. 귀하게 대접받은 아이는 결코 잘못될  없다.

 아이는   아이의 아이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것이 가족, 사회, 인류 역사의 선한 대물림이다.

내게  ,  손에 맡겨진  아이를  키우는 것이  세상을 위해 내가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며, 역사를 바꾸는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희대의 악마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그 악마가 또 다른 악마를 만들기도 하고, 인류 역사에 기리 남을 인물이 탄생하기도 하고, 인류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혁신가가 나오기도 한다. 악마든 혁신가든, 그들도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는 각자가 고유한 존재이자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빛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부터 역사의 선한 대물림을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 우리 부모가 그렇지 못했다고 보고 배운 대로 그대로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부터 그것을 끊어내야 한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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