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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카 Jul 31. 2021

조용한 적극성

책 <사소한 것들의 구원> 중에서...

<사소한 것들의 구원>이라는 김용석 작가가 쓴 책을 보다가 내 눈을 사로잡는 목차가 몇 개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조심하며 산다는 것, 마음을 쓴다는 것...


책의 일부를 발췌하여 본다.


<조심하며 산다는 것, 마음을 쓴다는 것>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방문객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에, 곧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의 일생에서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찾아오는 사람’과 그를 어떻게 ‘맞아야’ 할지에 관한 삶의 지혜는 고대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이 시는 방문과 환대를 노래하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만나러 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 <방문객>은 인생의 통찰력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순간 그 사람의 현재와 마주하는 것이지만, 만남의 순간들은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며 진행합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만남의 결과로 사람들의 미래에 변화가 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만남에 작은 손상이라도 온다면, 사람의 인격에도 그만큼의 손상이 옵니다. 만남은 손상되고 부패하며 파괴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격도 손상되고 부패하며 파괴됩니다. 일상의 만남에서 상대에 가한 ‘작은 타격’은 인생의 ‘큰 충격’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박하사탕처럼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지요. 노골적인 모욕은 말할 것도 없고요. 상대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와 언사에 잠재한 차별과 멸시의 의도는 큰 상처를 주지요. 우리는 심술이 가득 밴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것이 상대에게 오랫동안 삶의 흉터가 될 수 있음을 종종 잊습니다. 특히 신체적 약점에 대한 농담은 오래 남지요. 더구나 자신의 울화를 해소하기위한 막말은 폭력적이어서 정신적 외상을 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허물을 타박하거나 면박할 때에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때 조심한다는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남에게 ‘마음을 쓴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조용한 적극성을 뜻합니다.


이런 파괴의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사건’이 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칼날처럼 끊고 들어오는 사건, 곧 단절의 사건이 됩니다. 인생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파괴의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인생은 ‘한 사건의 여파’들로 되어 있습니다. 남은 인생 전체가 어느 순간 삶에단절로 개입하는 한 사건에 의해 엄청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의 미래와 만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니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우리가 인생을 성찰하고 타인에게 마음을쓰며 사는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만남이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마어마하게 소중한것이니까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의 미래와 만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니 어마어마한 일이지요. 우리가 인생을 성찰하고 아이에게 마음을 쓰며 사는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만남이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줄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은 누구에기나 어마어마하게 소중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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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중요하다. 생명의 만남이 있고, 파괴의 만남이 있다.

생명의 만남을 위해 우리는 조심해야 하며, 마음을 써야 한다. 조심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마음을 쓴다는 뜻에서 조용한 적극성이라고 이 책의 작가는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조용한 적극성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든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의 미래를 만난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어떻게 아이를 대하는 가에 따라서 아이의 미래가 좌지우지 된다.

내가 환대를 하느냐 하대를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마음 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한 생명의 '무의식'을 빚어내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부모와 아이의 만남...

이 모든것에는 '조용한 적극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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