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약을 먹고 바뀐 사소한 것들
오전 5시 반부터 참 많은 일을 했어요. 8시 50분, 회사에 도착합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가방이랑 옷을 놓고 책상 위의 쓰레기를 모아 버려요. 제 책상이 깨끗하지는 않아요. 온갖 물건이 다 나와 있거든요. 그렇지만 깨끗해요. 쓰레기는 버리고 알콜 솜으로 책상을 닦으니까요. 청결한 책상인데도 절대 정돈되어 보이진 않는 책상입니다.
책상을 청소하고 나서는 커피를 찐하게 내립니다. 메디키넷의 용량을 조금 더 높게 먹을 때는 커피 생각이 별로 안 났는데, 낮춰서 먹고서부터는 커피가 필요해지더라고요. 저는 카페인에 그리 민감하지 않아서 커피를 많이 먹을 때는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서너 컵까지 먹었습니다. 잠들기 직전에 커피를 마셔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아요. 이 말인즉슨 아침에 커피를 마셔도 그다지 잠이 안 깬다는 건데요. 그래도 안 먹은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마셨습니다. 지금은 약이 각성을 시켜 주니까 커피의 양도 줄었어요. 저희 의사선생님도 마셨을 때의 상태가 괜찮다면 커피 마셔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러고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담배 한 대를 태웁니다. 담배는 참 나빠요. 심각한 중독성 물질이자 유독성 물질입니다. 언젠가 큰 병에 걸리면 젊은 날 담배를 태웠던 걸 후회하겠지요. 하지만 이 매거진에는 최대한 모든 걸 솔직하게 적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이런 나쁜 행동도 보여드립니다. 담배 끊으신 분들 정말 대단해요. 뭐가 되셔도 되실 겁니다.
막간을 이용해 잡담을 할까요. '회사에 살아서 도착했다'는 말에 대해서요. ADHD 약을 먹으면 저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요. 치료에서는 불편하고 괴롭게 느꼈던 것들에 대한 변화가 중요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변화도 제게는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출근길의 변화를 몇 가지 적어볼게요.
골목길에서 차가 갑자기 경적을 울린다거나, 튀어나오는 차에 치일 뻔한다거나 하는 경험은 다들 있으실 거예요.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차나 오토바이, 자전거 등에 자주 치일 뻔하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나서 이런 일이 현저히 줄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일단 차가 다가오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됐어요. 차가 나올 법한 길을 건널 때도 무작정 튀어나가는 게 아니라 좌우를 살피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차가 다가오면 금방 몸을 뺄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상하고 신기합니다. 목숨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이게 가장 값진 약물 치료 효과일지도 모르겠네요.
차에 덜 치일 뻔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피하지 못해서 갑자기 덜컥 마주보는 상황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줄어드니까... 길 다니는 게 엄청 편하더라고요?
여러분은 느리게 걸을 수 있으신가요? 이상한 소리 같지만 저는 느리게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느리게 걸어도 속이 터지지 않아요. 언제나 제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걸어다녔는데, 지금도 그건 비슷하지만 마음을 먹으면 느리게 걸을 수 있게 됐어요.
어릴 때는 무단횡단을 참 많이 했어요. 신호등 불 바뀌는 걸 도무지 기다리지 못했거든요. 자동차 신호등을 보면서 차가 안 온다 싶으면 냅다 건넜습니다. 아마 충동성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인이 되어서는 무단횡단을 안 했지만, 그래도 신호 기다리는 시간이 고역인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유독 그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신호를 기다리는 게 그렇게 괴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ADHD의 '증상'이라고 하기엔 참 애매한 것들입니다. 삶에 그다지 불편을 초래하는 것도 아니고요.(목숨은 좀 위험해도?) 하지만 변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이기도 해요. 그래서 약물치료 후의 변화가 지금도 신기합니다. 아무튼 조금 놀다 보니 9시네요. 일을 시작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