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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16. 2020

느낀점 말하기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전 세계가 판데믹으로 혼란을 겪는 지금, 한낱 개인인 나는 모순적이게도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는 중이라고 하면...


예정대로라면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 있었야 하지만 어떻게 인생이 계획한 대로 흘러갈까. (근데 코로나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코비드 때문에 내가 못한 건 프랑스에 가지 못한 것. 그 외에는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프랑스에 가는 게 제일 하고 싶은 거였지만.


그렇게 올 초 거리두기를 할 때, 읽고 싶은 책들을 좀 많이 샀다. 그중에는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책도 있고 그냥 표지를 보고 산 것도 있고 sns에서 흘러가듯 본 책도 있다. 그게 바로 권여선 작가의 <아직 멀었다는 말>이다.


단편집인걸 배송 후에야 알게 되었고, 이 작가가 <주정뱅이>의 작가라는 것도 책을 중반부쯤 읽었을 때 비로소 알았다. 알자마자 내가 한 반응은,

"아, 어쩐지..."

<주정뱅이>라는 작품은 내가 대학 때 속해 있던 북클럽에서 한 번 읽었던 책으로 완독을 하지는 못했다. 특유의 우울함과 슬픔이 자리 잡은 책이어서 난 그때 읽기를 거부했었던 거 같다. 동일 작가라는 걸 알았다면 이 책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겨울에 샀지만, 5월에 손을 대기 시작해서 7월인 지금 여름에 끝냈다. 게으름과 더불어 너무나 적나라한 현실적 묘사에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건지 뉴스를 읽는 건지 헷갈렸기 때문에 몇 줄 읽고 덮고 그러다가 또 생각나면 읽고 그랬다 아무튼.


몇 개 생각나는 단편이 있는데, 비정규직 시간제 강사(근데 비정규직과 시간제는 같은 의미니까 한 번만 써야 하나?)와 카프카 <변신>의 그레고리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을 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마지막 단편, <전갱이의 맛>. (마지막에 가서야 이런 글을 읽으니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역시 좋은 건 아껴두고 마지막에 먹어야 하나? 이런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브런치에 이 책에 관한 글을 올리는 이유는 (린다 노클린의 에세이 번역도 있고 공간 글도 마무리지어야 함을 아주 잘 알지만 역시 행동하지 않음에 있어서 모르는 거 같기도...) 이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그렇다. 내가 지금 본능에 충실한 오감을 만족하는 삶을 살아도 그걸 표현하지 못하면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삶을 사는 거 같다. 그래서 다이어리를 꺼내 빈 공간을 채우고 지금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 하지 않나. 나는 이러저러해서 이런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어쩌고 끝!


다이어리에는 정말 나만 볼 수 있는 거니까 하고 싶을 때 말하고 말하기 싫을 때는 그저 잘 살고 있다는 글만 쓴다. 며칠 전까지도 그렇게 내 다이어리처럼 개인 sns에 글을 적고 공유했다. 그러나 한 중국인의 말을 보고서 나는 또다시 깨달았다. 말은 적은 것이 많은 것보다 훨씬 이점이다, 라는 것을 ('말'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단어들은 소비와 디자인이 있다. 요즘 내가 절실하게 느끼고 그렇게 하려고 실천 중.)


"有些话就让它烂在心里"

"어떤 말들은 그저 마음속에서 삭아 사라지게 두는 것"


그래, 말이라는 것이 다 뱉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어떤 말들은 상황에 따라서 제각기 다양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때로는 그저 마음속에서만 썩히는 것이 제일이라는 걸. 그렇게 또다시 배우고 말을 아낀다.


내 느낌을 표현하는 것과 때로는 그저 내 마음속에만 둬야 하는 그 균형을 잡기가 힘들지만 죽기 직전에는 아 그래도 잘 해왔다고 한번쯤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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