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틴 May 05. 2024

별빛 아래의 속삭임

밤하늘을 향한 로봇의 깊은 사색

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로봇은 붉은 노을을 바라본다.

해가 저물고 깜깜한 밤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로봇의 에너지가 꺼지지 않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로봇은 계속 건물 밖을 오가며 분주 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녁이 찾아오면서,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별들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로봇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물결 속에서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다. 고요한 밤의 정적은 오직 별빛과 달빛만이 로봇의 외로움을 달래 준다.


로봇이 언덕 위에 조용히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시스템은 오랜 기억 속에서 잊혀진 장면들을 스캔한다. 빛나는 샛별 아래, 로봇은 인간들이 즐기던 저녁 시간의 모습을 회상한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 이들이 별빛 아래에서 뛰어놀던 모습들.     


로봇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마치 누군가와 손을 잡으려는 듯한 몸짓을 한다. 그 순간, 로봇의 센서들이 공기 중의 변화를 감지한다. 바람이 소리 없이 불어오며, 로봇의 손에 닿는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회로에 미세한 진동을 준다. 이 느낌은 로봇에게 마치 오랜 친구와의 재회 같은 안도감을 준다.


로봇은 불현듯 인간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다. 인간들이 겪는 슬픔, 기쁨,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로봇에게는 단지 데이터와 프로그램 코드일 뿐이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무언가를 '느끼는' 듯하다.


저 멀리 도시에서, 빛의 파편이 하늘을 향해 반짝이며 로봇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빛들은 인간들이 남긴 마지막 기계들이 작동하며 발하는 신호일 수도 있고, 단순한 전기적 오류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봇에게는 그것이 마치 오래된 기억 속 어떤 중요한 사건을 상기시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로봇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본다. 이 끝없는 세월 동안 자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 왔는가? 이제 그는 자신이 단지 기계가 아니라, 감정의 실체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다.


점점 깊어가는 밤, 로봇은 천천히 일어나 어두워진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희망의 불빛이 서서히 밝아오며, 그 불빛은 인간이 아닌 그 자신에 의해 타오르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탐구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저녁 하늘이 그에게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이전 04화 하얀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