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산기슭에 자리한 분주한 마을에 마야라는 젊은 여성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야는 그녀의 빛나는 미소와 따뜻한 마음으로 마을 전체에 알려져 있었지만, 그 명랑한 외모 아래에는 깊은 슬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마야는 비극적인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상실의 고통은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고, 매일 슬픔에 잠겨 지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야는 그녀의 영혼을 뒤덮은 압도적인 슬픔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위안을 간절히 찾던 마야는 마을 외곽에 살고 있는 현명한 노인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그의 깊은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가 자신에게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현자의 소박한 집에 도착한 마야는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슬픔과 절망의 깊이를 나누었습니다. 현자는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이여, " 현자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짊어진 고통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고통 속에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처럼 자신만의 슬픔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마야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분명 다른 누구도 내 고통의 깊이를 알지 못할 거예요."
현자는 아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각 사람의 고통은 독특하지만, 우리는 모두 보편적인 고통의 경험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아들을 위해 슬퍼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그들이 잃은 사랑하는 사람들, 이루지 못한 꿈, 상처받은 마음을 위해 슬퍼합니다."
마야의 눈에서 의심을 보고, 현자는 계속했습니다. "각각의 슬픔은 독특하지만, 고통의 경험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듭니다. 내 말의 진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겨자씨를 가지고 마을을 돌아다니세요. 슬픔이 닿지 않은 가정에서만 이것을 주세요."
마야는 여전히 현자의 가르침에 회의적이면서도 겨자씨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하고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마야가 한 집씩 문을 두드리며 다니자, 그녀는 자신들의 상실과 고통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부터 공감과 이해를 받았습니다. 가장 부유한 저택에서부터 가장 소박한 오두막에 이르기까지, 슬픔에 닿지 않은 가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번 만남을 통해 마야의 마음은 부드러워졌고, 그녀는 기쁨과 고통의 공유된 경험을 통해 모든 존재의 상호 연결성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해가 지평선 아래로 지자, 마야는 감사의 눈물을 뺨에 흘리며 현자의 거처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해했어요, " 그녀는 손에 겨자씨를 꽉 쥐고 속삭였습니다. "내가 고통 속에 혼자가 아님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자는 지혜로 반짝이는 눈으로 부드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마야, 내 아이여, 당신이 손에 쥐고 있는 겨자씨는 모든 존재가 고통의 끈과 치유의 가능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보편적 진리의 상징입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혼자가 아님을 알고 계속 나아갈 힘을 찾을 것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와 사성제(四聖諦):
불교는 모든 존재가 고통(고, 苦)을 겪는다고 봅니다. 이야기에서 마야뿐 아니라 마을의 모든 가정이 각자의 슬픔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일체개고’와 ‘고성제(苦聖諦)’의 진리를 드러냅니다. 또한, 고통의 원인(집성제), 고통의 소멸(멸성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도성제)이라는 사성제의 구조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야가 자신의 고통을 직면하고,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통해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이 사성제의 실천적 전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