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7일, 경남 남해의 깊은 산속에서 한 사냥꾼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났다. 45세 강모 씨는 멧돼지 사냥에 나서 개 열두 마리를 동반하고 산길을 올랐다. 8부 능선에서 겨우 멧돼지를 포획한 그는 비탈에 앉아 숨을 고르며 승리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총이 갑자기 불을 뿜었다. 발사된 총알은 그의 하복부를 뚫고 겨드랑이까지 관통했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그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고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동반자'였다. 사냥개 중 하나가 흥분한 기세로 총을 건드려 넘어뜨렸고, 그 과정에서 안전장치가 풀린 총의 방아쇠에 개의 발이 걸려 격발 된 것으로 추정됐다.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둔 총은 멧돼지 사냥 직후라 여전히 실탄이 장전된 상태였다. 최초 발견자 김 모 씨의 증언처럼, 강 씨는 피를 흘리며 "개가 총을 건드려서..."라고 중얼거렸다. 엽사협회 회원 이모 씨의 설명도 비슷했다. "개가 달려오다 팍 부딪히면, 발가락이 우연히 방아쇠에 걸려 발사되는 거죠."
이 소식은 당시 SBS 저녁 뉴스를 통해 전국에 퍼졌다. 단순한 오발 사고로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불교의 가르침으로 돌아보면 이는 '살생의 인과'가 실제로 드러난 사례다. 불교에서 살생은 오계(五戒)의 첫 번째로, 생명을 해치는 행위 자체가 업(業)을 쌓아 미래의 고통을 부른다고 본다. 강 씨의 경우, 멧돼지를 사냥하며 살생의 고리를 시작한 순간부터 그 인과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 흥분한 개의 발이 방아쇠를 당긴 '우연'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살생의 에너지가 되풀이되어 결국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된 셈이다.
생각해 보자. 산속에서 총을 들고 동물을 쫓는 행위는 생명의 순환을 끊는 폭력이다. 불교 경전 《인과경》에서 부처님은 "작은 살생조차 누적되어 큰 업보가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강 씨의 사고는 그 비유를 생생히 증명한다. 멧돼지 한 마리의 죽음이 개의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그 흥분이 총을 건드리며, 결국 사냥꾼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는 '연기법(緣起法)'의 실증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인연으로 얽혀 있으며, 살생이라는 씨앗이 심어지면 열매는 피할 수 없이 돌아온다.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생명을 빼앗는 도구가 자신에게 향했다
총은 멧돼지를 죽이기 위한 도구였다. 그 총알이 멧돼지가 아닌 사냥꾼 자신을 향했다. 살생의 업이 그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자신이 데려온 존재가 매개가 되었다
사냥개는 강 씨가 사냥을 위해 직접 데리고 온 도구이자 동반자였다. 살생을 위해 키우고 훈련시킨 그 존재가, 역설적이게도 그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생명을 빼앗은 바로 그 순간에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타이밍이다. 멧돼지를 잡고 '성공'의 순간을 맛보던 그때, 안전장치를 풀어둔 채 방심한 바로 그 순간에 사고가 일어났다. 마치 인과가 즉각 응보 하듯.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이런 인과를 무시한다. 사냥은 오락이나 생계로 포장되지만, 그 뿌리는 여전한 살생이다. 동물원에서의 쇼, 공장식 축산, 심지어 일상적인 고기 소비까지 – 우리는 "이 정도쯤이야" 하며 작은 살생을 반복한다. 하지만 강 씨의 죽음은 경고다. 업은 보이지 않는 실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언젠가 '사냥개'처럼 예상치 못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이 비극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불교의 자비(慈悲)를 실천하는 삶, 즉 살생을 멀리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다. 산속 사냥꾼의 이야기는 먼 옛날이 아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선택이 내일의 인과를 짓는다. 총 한 자루가 아닌, 마음의 안전장치를 먼저 점검해 보자. 그래야 산속 비탈에서 숨을 고를 때, 총알이 아닌 평화가 우리를 맞이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