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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첫번째 명상

by 정영기

첫 번째 명상

부처님은 장미사과나무 아래에서 했던 그의 첫 명상을 기억한다...

그날은 밭을 처음 가는 날이었습니다. 전통에 따라 사람들은 고운 옷을 차려입고 들판에서 열리는 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나무에는 깃발과 형형색색의 천이 걸려 있었습니다. 최고의 음식과 음료가 차려진 많은 탁자들이 설치되었습니다. 브라만 계급의 성직자들은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읊었습니다. 그들은 밭이 건강하고 풍성한 수확을 낳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날 싯다르타가 아홉 살이었을 때, 숫도다나 왕과 그의 왕족, 그리고 모든 신하들이 그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찬송이 끝나면 가장 맛있는 케이크와 사탕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날을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 낭독은 너무 길어져서 곧 아이들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시녀들은 아이들을 바깥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실제 밭가는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싯다르타도 그들 중에 있었습니다.

들판에서는 허리까지 벗은 한 남자가 물소에게 채찍질하며 쟁기를 끌게 하고 있었습니다. 정오에 매우 가까웠고, 태양은 그의 맨등에 내리쬐었습니다. 그는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고, 밭의 이랑을 오르내리며 걷느라 눈에 띄게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움직이는 물소를 간헐적으로 채찍질했습니다. 물소는 자신에게 씌워진 멍에를 끌기 위해 매우 힘을 주어야 했습니다. 물소의 발굽은 거대한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땅을 움켜쥐었고, 그 뒤로 무거운 쟁기를 끌었습니다. 쟁기는 흙을 뒤집어 그곳에 집을 짓고 살던 벌레들을 드러냈습니다. 벌레들은 필사적으로 숨을 곳을 찾으려 몸부림쳤습니다. 다른 벌레들은 방금 반으로 잘려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왜 그렇게 많은 작은 새들이 땅 근처를 맴돌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쉽게 주울 수 있도록 맨살을 드러낸 살아있는, 무방비 상태의 벌레들과 다른 작은 곤충들을 먹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매 한 마리가 급강하하여 작은 새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발톱에 점심거리를 확보한 매는 하늘의 주인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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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는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밭을 가는 남자의 노고를 느꼈습니다. 그는 쟁기에 묶인 물소의 투쟁을 느꼈습니다. 그는 쟁기에 잘린 벌레들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삶이 갑자기 끝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벌레들과 곤충들, 그리고 작은 새들이 그들의 삶을 잃는 것을 보았습니다. 싯다르타는 그들의 두려움, 고통, 그리고 삶 자체의 예측 불가능성을 느꼈습니다.

한낮의 태양은 극도로 뜨거웠습니다. 싯다르타는 장미사과나무 아래로 피신했습니다. 나뭇잎들은 더위로부터 절실히 필요한 그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그는 돌판 위에 앉았습니다. 그는 시원한 표면에 다리를 얹기 위해 몸을 웅크렸습니다. 그는 숨을 고르기 위해 몸을 곧게 폈습니다. 그는 무릎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눈을 내리깐 채, 싯다르타는 들판에서 일어난 장면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웃고 주변에서 노는 소리로부터 초연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앉아 있은 후, 싯다르타는 자신의 생각이 가라앉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내면으로부터 고요한 자각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남자, 물소, 새들, 그리고 벌레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삶의 조건에 묶여 있었습니다. 벌레는 새들의 먹잇감이 되는 조건에 묶여 있었습니다. 작은 새는 더 큰 새의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조건에 묶여 있었습니다. 물소는 포로 상태로 살며 주인을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계속해서 더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삶의 조건들이 때로는 두려움과 고통을,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한순간에 작은 새는 벌레를 먹으며 즐거워했지만, 다음 순간에는 매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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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싯다르타는 조건들이 모든 이에게 다르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큰 자유와 안전을 누렸습니다. 왕궁 정원의 공작들은 확실히 물소의 그것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외모가 훌륭했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강했고 어떤 이들은 약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똑똑했고 어떤 이들은 어리석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 위에 두드러진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태어났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평화와 행복 속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고통을 피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행복하고자 하는 이 보편적인 소망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싯다르타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들판의 남자, 물소, 벌레, 그리고 새들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열기, 고통, 두려움, 그리고 피로에 대한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였습니다. 행복에 대한 그의 갈망과 고통에 대한 그의 혐오는 그를 다른 이들의 경험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공통된 경험의 기반 없이는 어떠한 연결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는 단 한 번도 단맛을 본 적 없는 시종에게 달콤한 요리의 맛을 설명하려 했을 때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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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강한 신념이 싯다르타를 사로잡았습니다.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그는 먼저 자신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고통을 만들어내는 조건들의 본질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 조건들을 바꿀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싯다르타!" 누군가 왕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숫도다나 왕과 고타미 왕비는 싯다르타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왕비는 아홉 살짜리 아이가 그렇게 평온하게 명상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왕의 얼굴 표정은 즉시 굳어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 싯다르타가 언젠가 진리를 찾아 떠나리라는 것.


1. 고통의 목격: 사성제(四聖諦)의 씨앗

이 이야기의 핵심은 어린 싯다르타가 고통(苦)의 현실을 직접적이고 충격적으로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그가 깨닫게 될 첫 번째 고귀한 진리(苦聖諦), 즉 "삶은 고통이다"라는 가르침의 원초적 경험입니다.


인간의 고통: 땡볕 아래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노고.

축생의 고통: 억지로 쟁기를 끌어야 하는 물소의 힘겨움.

미물의 고통: 쟁기 날에 몸이 잘리는 벌레들의 끔찍한 고통.

생존의 고통: 벌레를 잡아먹는 작은 새와, 그 새를 다시 낚아채는 매의 생존 경쟁.


싯다르타는 이 장면에서 그 어떤 존재도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즐거움(새가 벌레를 먹는 것)은 다른 존재의 고통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 즐거움조차 또 다른 포식자에 의해 곧바로 고통으로 전환됩니다. 이는 모든 쾌락은 일시적이며 근본적인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불교의 통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2.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연기(緣起)의 발견

싯다르타는 개별적인 존재들의 고통을 넘어, 그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꿰뚫어 봅니다. 이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緣起) 사상의 원초적 발견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긴다(此生故彼生)."

먹이사슬: 흙이 있으므로 벌레가 살고, 벌레가 있으므로 새가 살고, 새가 있으므로 매가 삽니다. 농부의 생계는 물소의 노동과 땅의 생명력에 의존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인과관계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건에 묶인 삶: 싯다르타는 '벌레는 새의 먹이가 되는 조건', '새는 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조건', '물소는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하는 조건'에 묶여 있음을 봅니다. 그 어떤 존재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조건과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연기의 법칙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3. 보편적 연민의 시작: 자비(慈悲)의 발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싯다르타가 이 광경을 단순히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깊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감정 이입: 그는 농부의 노고, 물소의 힘겨움, 벌레와 새의 두려움과 고통을 자신의 경험(더위, 피로, 고통)을 통해 연결하여 느낍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 아닌,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 즉 자비(慈悲)의 시작입니다.

공통된 소망: 그는 모든 존재가 처한 조건(공작, 물소,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달라도,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보편적인 소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발견은 모든 생명에 대한 차별 없는 연민과 사랑의 근거가 됩니다.


4. 위대한 길의 서막: 보리심(菩提心)의 발아

이 깊은 성찰은 싯다르타의 마음에 위대한 결심을 싹트게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면, 먼저 나 자신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고통을 만들어내는 조건의 본질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의 최초 발현입니다. 보리심이란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나 자신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위대한 서원입니다. 그는 단순히 고통을 외면하거나 감상에 젖는 대신, 고통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일으킵니다.

이 사건은 훗날 그가 왕궁을 떠나 출가하고, 6년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고통의 원인(集聖諦)과 그 소멸(滅聖諦),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길(道聖諦)을 발견하게 되는 대장정의 진정한 출발점인 셈입니다. 그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아들이 명상하는 모습에서 '진리를 찾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왕은 아들의 눈에서 세속의 군주가 아닌, 위대한 정신적 스승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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