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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과 공각기동대 비교 분석

by 정영기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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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한 두 거장의 만남


봉준호의 '미키17'(2025)과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는 30년의 간격을 두고도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두 거장은 각자의 문화와 미학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한국의 블랙 코미디 거장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사상가는 과학기술이 변화시키는 인간성의 미래를 그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답하지만, 그 응답들은 하나의 교향곡처럼 조화롭게 울려 퍼진다.


두 세계의 정교한 지도


미키17: 죽음이 일상이 된 복제인간의 아이러니


"오늘 죽어도 내일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니플하임 행성의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에게 죽음은 단지 귀찮은 업무일 뿐이다. 17번이나 죽고 부활한 '익스펜더블'에게 죽음은 야근처럼 불만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시스템 오류로 미키17과 미키18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위기가 시작된다. 마치 거울 속 반영이 갑자기 독립적인 생각을 한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과 같다.


봉준호 감독은 이 독특한 설정으로 "우리는 단순히 기억과 경험의 합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공각기동대: 디지털 바다에 떠도는 영혼의 고독


"네트워크에 접속한 자의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2029년,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완전한 사이보그다. 그녀에게 육체는 교체 가능한 '껍질(Shell)'에 불과하고, 내면의 '고스트(Ghost)'만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디지털로 복제된 내 기억과 의식에서,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가?" 스마트폰에 일상이 저장되고 SNS에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하는 현대인에게도 공감되는 질문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이 실존적 고민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진 세계의 자아 의미를 재고하게 만든다.



테세우스의 배: 두 거장의 철학적 놀이터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의 배' 역설은 두 작품의 핵심이다. "모든 부품이 교체된 배가 여전히 같은 배인가?"라는 질문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미키17'에서 봉준호는 이 역설을 복제의 관점으로 확장한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지만 별개 신체를 가진 두 미키는 동일인일까? 두 복제체가 다른 경험을 쌓으며 서로 다른 인격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두 줄기와 같다. "같은 기억을 가진 두 개체가 모두 '진짜'라면, 정체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공각기동대'에서 오시이는 의식이 육체를 넘어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쿠사나기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어쩌면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의 나는 모의인격이 아닐까? 아니 애초에 '나'란 존재했을까?" 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디지털 시대에서 재해석하며 "디지털화된 의식도 영혼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기술과 인간성: 두 편의 세련된 디지털 우화


미키17: 자본주의의 극단, 소모품이 된 인간성


봉준호는 복제 기술을 자본주의적 노동 착취의 극단적 형태로 묘사한다. 익스펜더블 미키는 문자 그대로 '소모품'이 된 인간의 초상이다. 그는 끊임없이 죽고 부활하는 현대판 시지프스처럼 시스템에 봉사한다.


'설국열차'의 계급 구조를 외계 행성으로 옮긴 듯한 사회에서 식사 장면은 계급 차이의 상징이 된다. 하층민은 합성 단백질로 만든 열악한 음식을 먹는 반면, 지배층은 풍요로운 식탁을 누린다.


봉준호는 이 대비를 통해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욕망과 권력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키의 여정은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세계에서 자신의 인간성과 존엄을 되찾으려는 실존적 투쟁이다.



공각기동대: 디지털 바다의 시적 실존주의


오시이 마모루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시적으로 탐구한다. '인형사'라는 인공지능은 광대한 네트워크를 여행하며 자아를 깨닫고 자신을 생명체라 주장한다. 그는 쿠사나기에게 혁명적 제안을 한다. "네트워크에서 무한한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자." 이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의식의 자유로운 확장을 암시한다.


오시이는 물에 비친 그림자, 유리창의 반사, 도시의 깊은 수직성을 통해 정체성의 불확실성과 다층적 본질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SF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적 명상이다.



소통과 공감의 위대한 힘


두 거장은 인간 존재의 핵심에 '관계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미키17'에서 봉준호는 외계 생명체 '크리퍼'와의 소통을 통해 "통역의 신성함"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킨다. 이는 '옥자'에서도 다룬 주제로, 서로 다른 존재 간 소통이 이해와 공감을 넓히는 방식을 보여준다.


미키의 자아 발견 과정에서 나샤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그녀는 미키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그의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는 "타인의 인정으로 완성되는 자아"라는 헤겔의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쿠사나기가 네트워크로 타자와 연결되고, 인형사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진화한다. 이는 불교적 윤회 개념과 연결되며, 두 의식의 융합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존재는 디지털 시대의 혁신적 연결 방식과 존재론적 가능성을 암시한다.


디지털 시대의 오디세이


30년의 간극을 두고 '인간됨'의 본질을 탐구한 두 걸작, 봉준호의 '미키17'과 오시이의 '공각기동대'는 다른 항로를 택했으나 같은 철학적 대양을 항해하는 배와 같다. 두 작품은 기술이 인간의 정의를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디지털 시대의 실존적 질문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AI와 생명 복제 기술이 현실화되는 지금, "당신은 누구인가? 그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절실해진다.


두 거장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흥미롭게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다. 정체성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이나 의식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두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영원한 대화를 이어간다. 마치 밤하늘의 두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우주적 질문을 향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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