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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킴 Jul 08. 2024

31화. 불안이 우리를 덮쳐올 때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오랜만에 보는 픽사의 애니메이션인 '인사이드 아웃 2'를 관람했다. 지난 인사이드 아웃 1편도 정말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참신한 비유로 영화 내내 생각이 많아졌는데, 이번 후속작은 더더욱 뇌를 풀가동하게 될 정도로 기가 막힌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심리학자 몇 명이 투입되어서 만든 걸까 싶은 정도로 대사와 상황 하나하나가 정말 주옥같았다. 


사춘기를 맞이한 주인공에게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기존 감정 캐릭터들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추가적으로 생겨났다. 우리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매몰될 때를 정확히 그리고 너무도 감각적으로 묘사해 냈다.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이자 주인공의 감정은 불안(Anxiety), 따분(Ennui), 당황(Embarrassment), 질투(Envy)이다. 이 중에서도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불안에 강한 초점을 맞추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I'm a good person)"


영화 내내 수십 번은 반복되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 자아가 만들어 낸 그녀의 가치관이다.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를 연재하고 있는 나에게 굉장히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좋은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도덕적이고 성품이 바르며 예의 바른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그렇기에 내 감정이 그렇지 못한 순간에 나와 사회적 시선에 대한 괴리감으로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재밌세도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아, 설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면 어쩌지?' 하는 작가로서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이 주는 메시지라면 내가 쓰고 있는 글과 전혀 반대의 결론이 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이라도 예기치 못한 극심한 불안함과 자신이 알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크게 다른 순간의 괴리감을 느껴본 순간이 있다면, 주인공이 불안함에 숨이 벅차오르는 순간에 굉장한 공감이 갔을 것이다. 영화는 그 순간에 감독이 의도한 지는 모르겠으나 현대인이 한 번쯤은 겪어보는 '공황발작'을 아주 기가 막히게 연출해 냈다. 사실 공황장애라는 말이 여러 연예인들에 의해 매스컴에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그저 극심한 불안으로 넘겼을 문제를 이제는 통칭 '공황 발작'증세로 여기고 있다. 물론, 해당 장면이 100% 공황 발작의 장면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음에도 해당 증세를 겪어본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순간을 꽤나 재치 있게 해결해 조금의 속 시원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난 부족해(I'm not good enough)"


한글 자막으로는 난 부족해라고 번역이 되었으나, 그냥 영문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주인공이자 모든 유년 시절의 우리에게 '난 좋은 사람이 되기엔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는 근거가 없어도 충분히 채워지고 마냥 행복하게 지켜지던 주인공과 우리의 자존감이 청소년기를 지나며 많은 교우관계를 겪고 사회로 나아가며 수많은 비교와 경쟁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며 떨어지는 모습을 마찬가지로 캐릭터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불안이 우리를 덮쳐올 때


내가 영화를 보며,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학자의 자문을 엄청나게 받았을 것 같은 장면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그러한 증상과 극복 과정을 캐릭터로 그려냈다는 점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한 이유는 마치 혹사병으로 한없이 망가진 생쥐의 이미지를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마케팅이 반전시켜 준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이 영화 내내 주인공의 머릿속 캐릭터들을 통해 우리가 불안이 밀려올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혹은 내 불안과 신체적인 증상들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안이 우리 머릿속을 지배할 때, 우리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순간에도 불안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벌어지지도 않은 수많은 미래의 에피소드들을 생성해 내며 '실패하면 어떡하지'의 수십 가지 버전을 만들어 우리를 괴롭힌다. 영화에서도 불안이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이 공교롭게도 주인공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으로 표현되었다. 더 나아가 충동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불안이 가득 차 있을 때 얼마나 우리에게 조절력이 떨어지는(사리판단이 되지 않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하는지를 재치 있게 전체 관람가로 잘 표현했다.


영화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나는 더욱 확신을 가졌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주고 싶은 메시지는 불안이 우리를 덮쳐올 때 우리 머릿속의 모습과 마음의 무너짐이다. 해당 장면에서도 불안이 우리 머릿속을 헤집어 높고 마치 소용돌이가 치는 것처럼 우리를 괴롭힐 때 다른 감정들을 되돌아볼 새도 없이 불안함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불안함이 머리와 마음을 잠식해 버리면 잠도 오지 않고, 불안한 미래만이 또렷하게 그려지며(이 부분도 영화에서 너무 감각적으로 표현되었다), 시야도 흐려지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결말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스포일러를 피해 지나가고, 마지막에 나의 마음을 울린 대사가 있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이었다. 결국,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우리의 행복했던 경험과 기억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모든 행복하고 슬프고, 뜨겁고 차가우며,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순간들이 지금의 우리 각자의 인생 가치관이자 신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긴 인생에서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는 외적인 요소들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적어도 '나'의 인생은 내가 바꿀 수 있으며 그 시작은 '나의 감정'에 있는 것이다. 사춘기를 지나며 기쁨과 슬픔 같은 기본적인 감정들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불안함과 남에 대한 질투 같은 감정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 불안함이 우리를 덮쳐 올 때, 자기 자신의 감정을 내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불안은 점점 더 커져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결국 신체적으로도 위험 신호를 마구 보내게 될 것이다. 


공황 발작, 우울증 등등 우리나라의 성인들이 지금 달고 사는 흔한 질병이 되었다. 보통 사회 조직의 문제, 친구와의 갈등, 성공에 대한 압박감, 금전적인 어려움 등이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넣게 된다. 그런 우리들에게 영화 캐릭터들은 말한다. 


불안이 우리를 덮쳐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

네가 가진 모든 경험과 신념, 그리고 직면하는 모든 감정들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고,

그 감정들 하나하나와 마주하고 직면하면, 반드시 너는 해결책을 찾을 거야.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모범적인 정답과도 같은 '좋은 사람(Good person)'이 될 필요가 없다. 

당신과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내일이 불안한 이 와중에도 기쁘고 슬프고 행복했던 그 모든 순간의 나로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갈 것이기에 당신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능청스러운 연출과 영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우리 마음에 대한 위로를 통해 당신의 내일도 기쁨 이가 마구마구 감정 버튼을 눌러대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불안이 가 나보다 먼저 잠들어 버리는 오늘 밤이 되길!)


You are good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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