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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킴 Jul 11. 2024

32화. 모두에게 이번 생이 처음이듯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전 세계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이번 생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나의 밈에 빠져있는데 그건 바로 '그럴 수 있다'이다. 


삶의 시작에 있어서 태어남은 내 맘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은 그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리고, 시간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나에게도 정해진 길이 있으리라 믿는다. 


어릴 적 엄마에게 잔뜩 혼날만한 잘못을 하고 사랑의 매와 함께 많이 혼난 적이 있다. 

이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다섯 살이 처음이었으니까, 나도 갖고 싶던 장난감을 그렇게도 갖고 싶던 마음이 든 건 처음이니까.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인터넷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며 갖가지 비속어와 욕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마음껏 내뱉고 서로 웃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겠지. 그러나 어쩌겠나, 내 초등시절도 난 처음이었음을. 그럴 수도 있지.


중학교에 들어가서 사춘기에 접어들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가슴에 끓어오르는 그 분노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소심한 반항을 해봤다. 이를테면 문을 세게 닫아버리고 바람 때문에 닫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학교 선생님에게 왜요!라고 말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감정이 휘몰아치고 신체의 변화를 겪고, 이성에 눈을 뜨는 그 격정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었을 텐데 어쩔 텐가? 나도 당신도 우리도 모두 처음이었음을. 그럴 수 있지.


고등학교 때는 학업과 싸웠다. 부모님이 원하는 성적과 내가 하고 있는 열심히라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공부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이성 친구에 더 많이 휘둘렸다. 축구 선수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해 무모하게 남해 해남 땅끝마을까지 축구 선수를 하겠다고 무작정 내려간 적도 있다. 어느 날은 내가 다니는 대형 교회 담임 목사님을 찾아가 제발 미국에 축구 유학을 보내 달라고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결국 학업을 통해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지 않겠어? 나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랬음에 후회가 없다. 많이 혼났지만, 그런데 어쩌겠어? 그게 나이고, 나도 내 학창 시절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잖아? 그럴 수 있어.


대학 시절 나는 정말로 아웃사이더였다. 음주도 좋아하지 않았고, 연애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 나를 내 동기들과 선배들은 정말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니 다들 그대로 내 옆에 함께 있더라. 그리고, 대학시절과 졸업 후에 열심히 준비했던 교원임용고시에도 결국 최종관문에서 두 번 탈락한 아쉬운 기록과 함께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최종 관문에서 두 번째 떨어졌을 때 내리는 비를 혼자 다 맞으며 놀이터 그네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원망했다. 그런데, 나는 결국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교사 생활을 3년 해냈고,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료들과 제자 몇백 명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뭐 어때? 그때 흘린 눈물도,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잖아? 처음이니까.. 처음이니까 고꾸라지고 처음이니까 울 수도 있는 거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이제 우리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각자의 인생에서 각자의 일터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연애, 결혼, 취업, 이직 등등의 어쩔 수 없는 매번의 시험에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있잖아, 내가 어제 아침에 햇살을 느끼며 잠에서 깨었더라도 오늘의 햇살은 또 우리에게 '처음'일 거야.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내 부모님도 내가 인생에서 첫 자식이며, 첫 육아이자, 첫 과제인 거야. 지금 만나는 사랑하는 사람도, 우리가 아무리 연애를 수도 없이 많이 해봤더라도 그 사람과 나는 처음인 거야. 


그러니까, 어떤 갈등이 있어도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이거 하나만 우리는 오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어'


우린 모두가 '처음'이니까, 내일도 우리에게 '처음'일 거니까. 

우리 인생에서 마치 쳇바퀴 같을지라도 오늘은 '처음' 주어진 거였으니까.


당신이 오늘 어떤 실수를 했고, 어떤 분노가 차올랐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그런 죄책감에 잠이 오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어! 우린 오늘, 오늘을 처음 살았잖아!

잘하려고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도 너무 노력하기보다. 그저 오늘의 내가 맞이했던 아무도 예상 못한 처음의 오늘을 버텨냈고 이겨냈음에 감사하는 밤이 되길. 


오늘도, 당신은 너무도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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