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2
차디찬 바람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밝았던 어느 주말에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예식장을 찾았다. 식사와 예식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시 예식이라 평소에는 자주 접하지 못하는 매우 고급진 음식과 뜨거운 박수가 가득한 아름다운 날이었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다 보니 예전에는 매일같이 함께하던 오랜 친구들을 이제 그런 행사가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그날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잘 지내? 뭐하고지내?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은 잘 보고 있어!"
나는 전형적이면서도 반가움과 약간의 어색함을 담은 인사를 건넸다.
"나는 여전히 배우하고 있지"
짧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어투로 친구가 대답했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배우를 하고 있는 친구였다. 나는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그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좋은 날 오겠지 뭐"
그를 처음 만났던 게 거의 25년이 넘었는데, 그 친구는 참으로 활발하게(?) 노는 것을 좋아했던 친구이다. 학창 시절 유명할 정도로 많이 활동적이었고, 항상 눈에 띄는 친구였다. 그랬던 그 친구를 오랜만에 보았는데, 말하는 어투나 단어 하나하나에서 그의 인생 깊이가 느껴졌다.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록에 40살 가수 황가람 님이 나왔다. 워낙 숏폼을 통해 다양한 클립을 보다 보니 본방송보다 짧은 영상으로 그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는데, 처음으로 인간 황가람에 대한 이야기를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147일간의 노숙생황에 대한 그의 이야기와 40살이 되어서야 빛을 발하게 된 그의 반딧불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오랜 고시 생활에 지치고, 낙방의 연속으로 눈물로 밤을 보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함께했던 많은 선후배들이 합격하고 나만 뒤처지는듯한.. 아니 뒤처진 게 맞는 그 순간에 하늘이 원망스러웠고 그 순간에도 나 자신보다 나를 위해 애써 괜찮은 척하는 나의 부모님의 모습에 운전대를 부여잡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펑펑 울기도 했었다.
나는 내가 뭘 해도 잘될 줄 알았고, 누구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부했다. 자기애가 강했고, 자존감이 높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나에게 시련을 안겨줬다. 솔직히 그 시련을 안겨준 건 하늘도 세상도 아닌, 그저 부족했던 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러나, 초라해지기 싫었기에 하늘을 원망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진행자 유재석 님이 황가람 님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순간 황가람 님의 눈빛도, 나의 마음도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우리 모두를 울렸다.
너무 오래 걸리니까..
한 번에 잘되려고 하지 말고..
가치 있는 일은 빨리 되는 게 아니니까
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진짜 바닥을 경험하고, 진짜 힘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의 말이 얼마다 깊은지를.
그의 가사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그의 인생이 담긴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하늘이 아닐지라도!
황가람 님은 쟁쟁한 뮤지션이 가득한 오디션에서 300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고 한다.
그 경쟁률을 뚫어낸 황가람 님도, 뚫지 못한 299명의 또 다른 반딧불이들도 언젠가 어떤 하늘에서는 반드시 빛을 발할 것이다. 40살이 되어서야 꿈을 이룬 황가람 님을 보면 노력과 간절한 꿈이 이루어지는 그 뚝심이 존경받을 만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기에 황가람 님의 스토리텔링에서 인생의 어떤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나의 고시생활을 그깟 고시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의 인생에서 그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깊이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깊이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 되었고, 지금의 나를 끊임없이 빛나게 하는 나만의 연료가 되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바닥과 마주하게 될지 모르는 우리네의 인생이지만,
그 하늘이 어디가 되었든 지금 아등바등 뜨거운 꿈을 위해 달리고 있는 당신이라는 개똥벌레도 장담하는데 어떤 하늘에서는 반드시 빛날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당신의 인생은 눈부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