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2
진짜 Chill 했던 그 시절 SNS
Chill Guy 밈이 2025년 1분기를 강타하고 있다. 쉬는 시간에는 전 세계 온갖 쇼츠와 릴스 영상을 보며 나름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있는데, 이 놈의 Chill Guy 밈은 도무지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간혹 나의 실소를 자아내는 양질의(?) Chill 한 콘텐츠도 있기는 하다.
인스타그램이 틱톡, 유튜브 쇼츠의 숏폼 물결에 맞추어 릴스를 강력하게 밀면서 프로필 피드마저도 애매한 비율로 늘려 놓은지 1개월이 지났다.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위치를 기반으로 시작된 SNS인데, 어느새 도파인의 향연이 되어버렸다.
버디버디, 싸이월드, 네이트온, 카카오 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각자가 나타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90년대 처음 SNS가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통해 시작될 때만 해도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위 '오그라드는' 콘텐츠들이 주를 이뤘다. 가수 채연 씨의 '난 ㄱㅏ끔 눈물을 흘린ㄷㅏ...' 를 다시 찾아보면 정말 오그라드는 사춘기 감성 가득한 콘텐츠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때만큼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던 시절도 없을 것 같다.
SNS가 가져다준 현대사회 정신병
분명 싸이월드나 버디버디를 주로 하던 시절에는 SNS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등장한 시점부터 우리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Social'과 'Network'는 무섭게도 우리에게 현대 사회와 개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괴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극 ENFJ이자 골목대장의 사주를 가지고 태어난 본 투 비 리더로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홍수와 같은 관계에 살짝 지쳤을 때, 전문 상담사와 대화를 하며 결론은 타인에 대한 감정과 생각은 너무 깊고 넓게 퍼져있는 데에 비해서 정작 나 자신의 감정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한 일이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는 일이었다.
지금 인스타그램이나 비슷한 SNS를 하고 있다면, 설령 SNS를 하지 않아도 카카오톡을 살펴본다면, 지인들의 사진과 글 콘텐츠들을 한번 쭉 보고 오면 좋겠다. 그럼 공통적으로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진, 행복한 순간과 멋진 말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외모로 보정된 그들의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SNS를 조금이라도 빠져서 하다 보면 알겠지만, 남의 행복만 보고 사는 것이 가져다주는 어떠한 질투와 시기의 감정은 둘째 치더라도 나의 가장 행복하고 예쁘고 잘생긴 순간을 빨리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어 하는 자기 마음속의 욕망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응? 나는 남 눈치 안 보고 그냥 올리는데?'
라고 생각하겠지만은, 당신의 마음과 그날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여 인스타그램에 지친 기색의 사진과 함께 올리는 경우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진짜 '나'가 아닌 인스타그램 버전의 '나'로 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진짜 '당신'과 사회적인 당신은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 버려서 다시 진짜 당신을 찾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정말 무서운 것은 어느 순간이 지나버리면 그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려버리고 그때부터는 SNS의 내가 진짜 나를 잠식해 버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끊임없는 물음표가 진짜 당신을 찾아줄 것
얼마 전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법륜 스님이 출연했다. 강의를 하실 때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즉문즉설'이라는 나름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이 질문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인 문답법과 비슷하다. 결국은 지속적인 질문을 하다 보면 왜 그 문제가 발생했는지, 왜 나는 헤매고 있는지, 왜 나는 힘들고 슬퍼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지?'
'왜 나만 힘들어야 하지?'
'왜 저 회사 사람은 나를 화나게 하지?'
나는 과거에 항상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그리고 오랜 생각의 굴레에서 나의 마음만 썩어가는 것을 느꼈을 때, 그 공허한 바닥을 보고서야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데, 나 또한 누구한테 그런 적은 없을까?'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 사람은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 회사 사람이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의 사소한 방향만 바꾼 것이지만, 이 방향의 변화는 나에게 굉장한 안정과 함께 여유와 연륜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생각이 남을 향하지 않고 '나'를 향하게 되니 진짜 내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생각의 변화이지만 나의 인생의 방향과 깊이를 바꾸었고, 단순한 생각만으로도 내일의 나를 더 강하고 두텁게 만들어주었다.
당신만의 진짜 인(人)스타그램을 만들어가길
나는 당신의 하루의 시작과 끝에 항상 깊은 생각과 정리가 함께하기를 바란다. 행복한 사진과 꾸며진 당신 말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든 그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 진짜 자신을 알면,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길이 보인다.
지금 당신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힘든 감정과 힘든 시기에 느끼는 모든 분노와 시기 그리고 질투를 기록해두길, 그 어둡고 끝없는 터널을 결국 지나서 다시 그 터널을 들여다보면 그때 나의 당신이 지금의 당신에게 재산이 되었는지 깨달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시간과 모든 감정을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 보내면 그 물은 다시는 맞이할 수 없지만, 그 강물에 대한 모든 감정과 느낌을 정리하고 기록해 두면 그 시간은 우리에게 반드시 가르쳐줄 것이다.
당신만의 인(人)스타그램을 알게 모르게 응원하며 팔로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날의 기록을 웃으며 돌아볼 정도로 깊어진 지금의 당신이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