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킴 Mar 19. 2024

16화. 당신에게 주어진 24시간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2024년 3월 17일 오후 7시 10분, 고창담양 고속도로에서 4중 추돌이 발생했다. 관련 기사들은 사고를 내어 사망 사고를 낸 80대 관광버스 기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사망사고가 발생했기에 그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백번이고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기사 중에서 사고를 정리하던 48세 A 씨의 죽음에 대해 다뤄지지 않는 것에 아쉬웠다. 그는, 사고 현장을 보고 누구보다도 더 고민 없이 현장을 수습하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다. 그건 평범한 이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용기이자 행동이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지 못했기에 어디에도 '의인'이라고 표현되지 않았으나 나는 그분을 누구보다도 더 '의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너무도 안타까운 결말이었으나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용기 있고 의로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진심으로 그의 행동과 용기를 존경하며 '의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3년 전 추석 연휴 때의 일이다. 나의 친누나가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골골댔었고, 우리 아버지는 배탈이라며 쉬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의 말을 어떻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하루 종일 배가 아팠던 누나는 결국 저녁즈음에 응급실에 갔고,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수 있었던 맹장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날의 포인트는 그것보다는 응급실에서의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 건강하고 건장하지만 너무도 격한 운동을 좋아하기에 응급실을 몇 번이나 다녀왔다. 어떤 날에는 내가 응급실에서 가장 큰 소리를 지를 만큼 아픈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응급실의 분위기는 내가 인생에서 겪은 분위기 중에 가장 참담하면서도 가장 내 인생에 남았던 기억이다.


추석 연휴였던 그날, 한 대가족이 응급실에 모였다. 나와 어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에 함께 들어가지 못했고 밖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가 누워있는 병실에 한 남성 어르신이 누워계셨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본 가장 긴급하고도 빠른 CPR을 그날 목격했다. 그의 대가족들은 추석이니만큼 전부 대기실에서 두 손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CPR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피 우는 한 할머님을 보았다. 그래서, 당연히 할아버님께서 위독하시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그 할머님을 위로하는 할아버님을 보았고, 그 위독하신 분이 아드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드님의 처자식들과 부모님이 한자리에서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결국, 그 아버님은 그날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그 할머님의 간절하고도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통곡을 나와 내 어머님은 목격했다. 그날, 어머님은 이야기했다. "삶이란 참으로 예상할 수 없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였다. 타인의 슬픔이나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나의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구차하면서도 참으로 나약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응급실에서의 그날의 기억은 내가 살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누구도 그 할머님의 마음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파하고 슬퍼하고 상처받고 힘들어도 내일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임용고사 1차에 합격했을 때도, 최종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 아직도 휴대폰 메모장에 적혀있는 문구가 있다. 


남의 불행에 행복해하지 말 것.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위를 보고 살면 항상 불행하고, 아래를 보고 살면 항상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남의 행복에 아파하지 말고, 남의 불행에 행복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비교하며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지금 우리의 삶에 만족하고 함께 하는 이가 있는 것에, 가족이 있는 것에, 친구가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힘들 때보다 하늘에 더 많이 기도하는 것은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정말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다. 가령, 당신이 생각보다 늦잠을 자서 회사에 지각할 것 같은데 그날 따라 버스가 빨리 오고 그날 따라 기사님이 쿨한 운전 실력으로 회사에 빨리 도착한다면 그것은 우연이다. 그런데, 반대로 감사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누구나 그런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회사에 늦었는데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한 버스 정류장에서 한 사람이 탄다. 그 사람 때문에 빨간색 신호등에 걸리게 되었고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지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그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안 탔다면? 


반대로 생각해 봐라, 내가 그 시간에 그 자리에 버스 정류장에 없었다면 반대로 그 신호등에 그 사람은 오히려 나 덕분에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을 수도 있다. 그 버스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남 탓을 하지도, 세상 탓을 하지도 말아라. 왜냐면, 당신 또한 이 세상의 흐름에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탓을 하고 수많은 후회와 원망을 하고 살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의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시간과 누군가의 인생에는 부정적인 한 순간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봐라, 나에게는 급한 타이밍에 마지막 남은 화장실 한 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일 수도 있지만 그다음 타이밍에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세상 원망스러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행복과 작은 행운에도 감사하며 살 필요가 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필요는 절대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행운에 감사할 줄은 알아야 한다.

왜냐면, 일상에서 주어지는 따뜻한 햇살과 오늘의 행복에 감사한다면 당신의 오늘도 당신의 내일도 반드시 행복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인생은 덧없고 언제 나의 인생이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백세 시대를 이야기하고 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야기한다. 


주변에 100세 많아?


우리는 언제나 밝고 희망적인 내일을 꿈꾼다. 

그런데 우리가 꿈꾸고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은 먼 미래가 아니다. 

오늘 밤, 그리고 내일 아침이다. 


당신의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은 반드시 행복과 행운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그럼 내일이 또 올 거잖아? 그러니까 믿어라, 당신의 하루 24시간이 그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24시간임을. 명심하는 오늘 밤이, 그리고 내일 하루가 되길 바란다.

이전 15화 15화. 하늘이 오늘 당신에게 준 기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