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잔머리를 참으로 잘 굴렸다. 특히 사람 관계에서 말이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나에 대한 글을 쓰자 마음을 먹고 나니 문득, 잔머리의 뜻이 정확히 뭔지 궁금해졌다. 잔머리는 사전적으로 '일을 손쉽게 하게나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부리는 얕은꾀'라고 한다. 즉, 잔머리를 잘 굴린다는 말은 결국 꾀를 잘 부리는 꾀돌이라는 의미와도 같은 것이다. 얼핏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다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의 잔머리는 꾀가 아닌 눈치라고 해석한다. 사람 사이에서 잔머리를 굴려 거짓말을 치고 사람의 환심이나 무언가를 갈취하는 그런 사기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눈치이고 눈치가 인간관계에서 의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빨리 캐치해 내는 능력
예전 글에서도 다뤘듯이 통상적으로 자녀 중에 둘째가 첫째 아이보다 눈치가 빠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가 칭찬을 받든 꾸중을 듣든 뭐든 먼저 할 것이고, 둘째는 그것을 두 눈으로 보며 성장하기 때문에 당연히 눈치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 첫째가 타고난 선천적인 기질이 너무 순해서 너무 칭찬만 듣고 자라면 둘째는 눈치를 보기보다는 엇나가기도 한다. 부모의 눈에 더 띄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는 사실 선천적이라기보다 전적으로 가정교육에 의해 길러지는 성격이다. 이것이 곧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지?'에서 오는 잔머리이자 눈치인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상사의 눈치를 잘 살피고 상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면 중간 이상은 갈 수 있다. 그 이상은 개인의 역량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ㅁ 생각 일기'의 지난 글을 통해 눈치만으로도 중간은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나의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속했던 각 집단마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꼭 한 명씩은 존재했다. 남의 이야기와 험담을 도저히 안 하려고 노력해도, 어떤 집단이든 결국 그 사람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왜냐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챙기지 않고 하루에 최소 8시간을 같이 지내다 보면 분명 불편한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집단이 단순 취미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면 덜 하지만, 문제는 직장생활일 때는 나의 실적과 성과가 그와 맞물려 있기에 더더욱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만 몰랐었던 이야기
그런데,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넌 눈치가 없다고 말해도 눈치라는 것은 살아오며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에게 박혀버린 후천적 기질이라 바꾸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눈치가 없는 사람이 눈치가 없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타나는 특징이 굉장히 과한 친절이나 과한 배려로 나타난다. 일단 눈치가 없다고 인식하고 고치려고 하는 순간, '아! 남이 지금 이렇게 생각하겠구나!'가 아니라 '아! 내가 나서야겠다'가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무조건 달려와 도와준다든지, 주변에서 불편한 내색을 해도 과도한 젠틀함과 스마트함으로 포장된 그의 선의는 사실 눈치 없는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그러나, 그 자신은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을 것이고, 남들은 또 그의 뿌듯해함을 보며 답답해하는 일이 참 많았다. 그래서 남에 대한 눈치가 비교적 없는 사람은 보통 '자신만 모르는 이야기'가 많다.
눈치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뜨겁고 빨간 하트
직장생활은 지난 글에서도 많이 다뤘으니 이번에는 사랑하는 연인 간의 잔머리와 눈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상에서 잔머리가 사회생활에서 눈치로 나타났다면,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눈치가 '배려'로 탈바꿈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 죽을 만큼, 혹은 살 이유가 될 만큼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글을 읽어보고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아직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니 오히려 진짜 사랑을 해보는 날을 기대해 보길!
잔머리를 굴려 눈치를 보니 배려가 되어 버린 사랑의 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와 모든 신경들이 그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큐피드의 화살이 양쪽에서 맞아떨어질 때 사랑은 뜨거운 스파크를 일으키며 커다랗고 불타오르는 하트를 그리는 것이다. 최근에, 이별 명장면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는데 한 드라마에서 이별하는 커플이 크게 싸우며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퍼붓는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너 나랑 데이트할 때 한 번이라도 내 물, 내 수저, 내가 앉을자리 챙겨준 적 있어?"
"너 비 오는 날에 내 어깨보다 네 어깨가 더 젖은 날이 있었어?"
"너 네가 먹고 싶은 것보다 내가 먹고 싶은 것 더 먹은 날이 있었어?"
"너 흐트러진 내 신발 정리해 준 적 있어?"
"너 내가 너 보고 싶다고 할 때 너 한 번이라도 우리 집으로 달려와준 적 있어 없어?"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이 영상을 수십 번도 더 보면서 느낀 것이 똑같았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상황을 작가가 이렇게 우다다다 쏟아내는 대사로 표현했구나 싶었다. 예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배려도 지능이다. 해당 드라마 대사에서도 느껴지듯이 나보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잔머리를 굴려 눈치를 보다 못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끝 없는 배려가 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내 어깨는 얼마든지 젖어도 되지만, 사랑하는 이는 비를 안 맞았으면 좋겠다는 사랑의 힘이 배려를, 눈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잔머리가 눈치가 되고 눈치가 배려가 된다고 말하면, 간혹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응? 연인한테 잔머리를 굴려서 잘 보이고 싶어 한다고? 그게 사랑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사랑의 힘'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인간은 단 1분 1초라도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진다. 아침에 거울로 본 내 모습 중에 옆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면, 하루 종일 그 사람에게 옆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의 힘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브랜드, 캐릭터, 아이템을 좋아하면 어딜 가더라도 그 물건만 보이고 갖다주고 싶은 것이 사랑의 힘이다. 여기에서, 키포인트는 그 물건이 보이느냐 사다주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아, 이 사람은 이걸 좋아하는구나
눈치가 빠르고 배려를 잘하는 사람은(아니,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작은 반응과 행동도 기억하게 되어있다. 사랑하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 반찬, 행동, 물건, 옷 등등 단순한 상대방의 반응과 한 두 마디에 그 사람은 자연스레 상대방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어 있다. 애석하게도 사랑을 제대로 알기 이전의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기보다는 나에게 상대방을 맞추려고 노력하기에 눈치와 배려보다는 사랑을 하나의 게임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자이가닉 효과(Zeigarnic effect)라는 것이 작용해 다시는 사랑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자이가닉 효과는 '미완성이거나 실수였던 일을 더 잘 기억하는 현상'인데,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첫사랑은 아련하면서도 아쉬운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학창 시절에 정답을 맞힌 수학 문제보다 아깝게 틀려버린 문제의 풀이를 더욱 잘 기억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눈치가 아무리 없는 사람도 '사랑'을 하게 되면 정말 사람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깨닫고 배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사랑의 힘은 실로 대단(?) 한 것이다.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잔머리를 굴려 눈치가 사랑의 힘으로 배려가 되었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사랑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잘 보이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게 되고 눈치를 보는데 그게 결국 배려가 되는 것이다.
없던 눈치도 만들게 하는 사람
당신에게 없던 눈치도 만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매일 신기함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차갑고 무거웠던 내가 따뜻하고 가벼운 모습을 보이며 상대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인생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이자 사랑의 순간이니 당신이 열심히 잘 보이기 위해 굴리고 있는 그 잔머리와 눈치를 의심하지 말아라.
그 열심히 굴러가는 잔머리와 눈치는 사실 배려와 사랑의 다른 표현임을, 지금 당신의 인생 시계에서 시계가 또 다른 시작을 알리고 있음을 반드시 깨닫는 뜨겁고 따뜻한 오늘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