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민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하면 더 영적으로 깊어질 것인가? 였다.
영적으로 깊어진다는 건, 어떻게 하면 더 주님을 닮고, 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뜻이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신학적으로 공부를 하고,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착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주님께 더 가까워지는 것 같거나, 더 주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더 아는 게 많아지고, 사람들이 보기에 독기 좀 빠지고 착해지는 거지,
내가 스스로 점검해보면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치 예전에 해탈하려고 죽어라 명상하던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영적인 진도를 나가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드렸다.
내가 갖고 싶은 상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면서 평안하게 있을 수 있는 상태다.
그런 상태를 내가 예전에 좋아했던 영성 작가인 마이클 싱어는 이렇게 표현했다.
자신의 호불호를 내려놓고 내게 좋은 것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삶에게 주도권을 넘길 때 당신은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 나는 삶이란 걸 믿지를 못했다.
그가 말하는 삶이 내가 말하는 삶과 단어정의가 다르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수도 있고.
당시에 나는 무신론자였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떻게 의지가 없는 우주가, 삶이, 내게 좋은 것을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가 말하는 삶을 주님으로 바꿔보면,
내게 좋은 것을 나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주님께 주도권을 넘길 때...로
아주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주님을 더 신뢰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자 일이 일어났다.
1년 반정도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을 논의하게 됐고,
여자친구의 존재를 집에다가 알렸을 뿐인데도 반대에 부딪혔다.
사유는 닭띠와 호랑이띠가 궁합이 안 맞다는 것이었다.
통계적으로 사실이 아니므로 의사결정 근거로 삼을 수 없는 말이다.
여태까지 살면서 많이 겪었던 루틴적인 반대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내게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은 참아넘길 만한 내공이 못됐고
그래서 언쟁이 오갔다.
특히 실망스러웠던 건, 부모님이 2년 전 정도에 나처럼 회심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근거가 못될 만한 비합리적인 사유를 가져와서,
그걸 바탕으로 내 계획을 알아보지도 않고 없애려는 패턴이 그대로 나오는 걸 보면서
'도대체 회심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될거면,
사랑으로 모든 일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더 날카로워지고 강해지는,
결국 세상의 룰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로 돌아가야 되는 건가? 싶었다.
나는 감정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전화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여자친구가 나한테 자세한 내막을 물어봤고
자기는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 하는 말이, '주님이 더 좋은 걸 주시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을 했다.
나는 오히려, '왜 이런 불필요하고 비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 모르겠다' 고 했고,
여자친구는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성장시키려는 주님의 계획이 아닐까?
어차피 반대하시는 이유 같은 건 다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기억해냈다.
내가 '주님을 더 신뢰하게 해달라' 고 기도했던 것을.
나는 신앙적으로 결정적인 지점에 올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는 것은
평소에 이런 지점에 깨어 있어서 주님의 의도를 살피는 것이었는데
깨어 있지 못했다.
다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서, 내 할 일을 하면서
이 일을 주님이 어떻게 이끌어가주실지 지켜봐야겠다.
그러면서 내게 남은 자아의 조각들을 더 벗어던지고,
주님을 더 잘 믿게 되기를 바란다.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마태복음 26 : 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