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태도

2018년을 마무리하며

by 하룻강아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동안 느낀 것을 18년을 마무리하며 써보려고 합니다.

지금도 약자이고 그때도 약자인데, 약자인데도 강자들에게 조금씩이나마 인정받는 부분이 있고, 저도 저를 믿어주시고 서비스를 이용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저와 그분들의 공통점을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18년이 끝날 때는 또 더 많은 것을 느끼겠지만 이 글로 저는 올해를 마무리해야겠네요.

어제와 오늘 폼이 4월달 전성기로 돌아와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이런 심리상태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풋내기와는 대사를 도모할 수 없도다.

- <사기>, 항우본기



오랜만에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본다.

시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전투력을 평가해보자.

말할 것도 없이 약하다. 포켓몬을 시작하면 상록숲에서 바로 마주치게 되는 레벨 3짜리 애벌레가 딱 시작하는 사람의 전투력이다.

물론 전투력이 높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시작했던 사람이지.



그럼 이 애벌레가 레벨이 오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로 자신이 애벌레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뭐...밟히면 터지고 여차하면 말벌에게 잡혀가서 산 채로 뜯어먹힐 수밖에 없는 전투력 0.5의 애벌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그 때부터 무엇을 해야 할 지 보이기 시작한다.

흔한 이야기이지만 정말 그렇다. 자신의 부족함이 아주 뼈저리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부족한 점은 이런 점이지만, 그래도 이런 점이 있으니까 괜찮아. 하고 약함을 덜 인정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자신이 약하지만 그래도 이런 점이 있어서 나는 잘될 수 있어. 그래도 지금은 약해. 하는 자기객관화와는 다르다.



약함을 인정한 다음에는 스승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승이 나타날 때까지 멍만 때리고 있어서는 안되고, 어떻게든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한다. 혼자서라도 애를 써야 한다.

노래를 하겠답시고 4년 전에 산에 들어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한 미약한 노력은 반드시 나중에 불을 뿜는다.

뭐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혼자 하면서 뭔가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독학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스승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스승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 처음 만난 스승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운이고, 대개의 경우 그 스승이 누구였느냐가 굉장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안 그런 괴물같은 애벌레도 있지만 억울하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지만 애벌레라도 눈이 있으니 그 스승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으면 좋다. 그건 옆에 있으면서 겪어보면 안다. 시키는 대로 하면서 천천히 겪어 보자. 이 눈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지 논리적으로 무슨 판단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모호한 기준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은 언행일치인 것 같다.

나는 나쁜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스승으로 모실 만 하다.

그러나 나는 나쁜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착한 사람이라면 위의 경우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핵심은 이것이다.

스승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면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의심하지 마라.

혹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시작할 때 그런 걸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들지 말고 일단 혹해라.

그리고 혹할만하다고 판단했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누굴 탓할 게 아니고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뿐이다.

나중에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됐는데 믿을 만한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손해가 적다. 그러니 인사 미스를 일으킬래도 지금 일으키자.

아무것도 없을 때.



그러니 조금 과장을 보태서 그 사람의 말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어라.

스승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계속해서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저렇게 하는 게 맞나요? 라고 피드백을 요청하면 좋다.

피드백 없이 내가 자꾸 질문하면 스승님이 귀찮으니 혼자 해야지. 하면 스승을 둔 의미가 없다.

그리고 피드백을 요청하는 애벌레가 보통 없기 때문에 스승은 귀찮지만 기뻐하기 마련이다. 그가 참된 스승이라면 더 그렇다.



지루한 과정을 만나면 더욱 기뻐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지루한 과정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며, 지루한 과정은 폭발적인 실력향상을 담보한다.

강태민대표님께 노래를 배우고 있는데,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여기는 과정을 진행중이다. 그 과정을 어떻게든 더 잘하고 싶어서 이번주엔 다시 산에 들어갔었다.

과연 그런 열정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과정이 단축된다.



중요한 것은 지루한 과정에서도 스승을 끝까지 믿는 것이다.

아무리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고 이렇게 해서 뭐가 될지 모르겠는데 만약 스승이 그걸 해서 된다고 하면 된다. 는 믿음을 가지고 그 지루한 과정을 기쁘게 지속하면 된다.

그리고 연습의 성과에 대해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을 반복한다.

둘 다 중요하다. 지루한 과정을 견디는 것, 피드백을 요청하는 것. 둘 중에 하나만 빠져도 균형이 무너진다.



또한 스승에게 실력을 보일 기회가 있다면 빠짐없이 참여하는 것이 좋다.

물론 다른 잘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 같은 실력이 참가해도 되는지 스스로를 의심할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실력을 보이는 것은 유리하며 스승에게 실력을 보이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거기서 스승에게 현재 내 수준을 알리고 또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승을 함부로 정해서는 안된다.

스승을 내 성장한계치로 인식할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내 모습을 스승 대신 성장한계치로 이미지할 수 있다면 이런저런 사람에게 두루 배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를 이미지하는 방법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은 모습들로 내 성장한계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에 도달할때쯤 되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전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정리하면

스승을 신중하게 정하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노력하면 좋다.

(그 수행은 완벽할 수 없다). 그리고 충실히 수행한 그 노력의 결과물을 계속 스승에게 보고하면 좋다.

또한 스승을 내 성장한계치로 이미지하지 말고, 내가 본 적 없는 궁극의 자신을 이미지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지속한다면 그래도 흰색 애벌레에서 초록색 애벌레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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