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글과 못 쓴 글
출판 편집자로 거의 15년을 일하면서 수없이 많은 글을 접해 왔다.
출판 시장은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데, 책을 내겠다는 사람은 오히려 더 늘고 있는 듯하다.
객관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체감상 그렇다.
찾아보니 책 출간을 목표로 한 커뮤니티도 눈에 많이 띈다.
그 카페의 주인장은 수많은 도서를 출간했고, 모두 베스트셀러라며 자신을 홍보한다.
그들이 출간한 출판사의 면면을 보니 준자비 출판이라는 시스템으로 도서를 출간하는 출판사가 대부분이다.그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식으로 자신을 홍보하는 것은 뭔가 부당해보였다.
심지어 이름이 알려진 출판 기획사, 에이전시가 준자비 출판을 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준자비 출판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일반 출판과 다를 바 없어 보여 일반인이 보기엔 그럴싸해 보일 것이다.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도 자비 출판을 요청하는 투고가 종종 들어온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가 책을 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 그걸 이용하는 출판사도 많다는 말이다.
출간 제안을 통해 계약한 저자의 원고나 투고로 들어온 일반 원고까지 하면 정말 다양한 사람의 글을 접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니 잘 쓴 글과 못 쓴 글이 한눈에 보인다.
그냥 던져준 원고를 얼핏 보기만 해도 이 글을 쓴 사람이 그야말로 글 좀 써 본 사람인지, 글 쓰는 걸 만만히 보는 사람인지 바로 눈에 보인다.
결코 잘 썼다고 할 수 없는 글인데, 글 쓴 사람 본인은 괜찮게 썼다고 뻐기는 듯한 경험도 자주 한다.
책은 별로 안 읽으면서 자신의 글은 책으로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자비 출판이지만, 그런 식의 태도는 편집자로서 좀 곤란하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저자와 작업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실 글이라는 것도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마음, 또는 개성이 담긴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잘'과 '못'이라는 말로 구분 짓는 게 나는 조금 탐탁지 않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지, 꼭 그렇게 남의 글 가지고 '잘'이니 '못'이니 따져야 하나 싶다. (전혀 출판 편집자답지 않은 의견이지만...)
이러니 글들이 점차 개성이 없어지지, 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적당히 논리나 구성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모든 글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책 출간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다.
단순히 내가 좋아 쓰는 글이라면 아예 평가라는 게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글을 누군가에게 팔아야 한다면 적어도 큰 틀에서는 '잘'이라는 기준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잘'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요즘 추세로 보건대, 보는 이가 충분히 내용을 이해할 만하고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그게 잘 쓴 글과 못 쓴 글을 구분하는 주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글이야말로 '못'이라고 평가해도 타당하다.
독자의 평가가 그러한데도 끝까지 자신의 글을 고평가한다면, 정말 골치 아픈 결과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