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하지 않는 마케터 어찌해야 할까?
이전에 근무했던 출판사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었다.
에세이, 자기 계발, 경제경영 등 분야마다 브랜드가 따로 있었는데,
지나치게 세분화한 느낌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사업부를 정리하면서 브랜드도 정리했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어딘가 정리가 덜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주력으로 사용하는 브랜드를 두 개로 정하고 출간할 예정이기는 했다.
그러나 단순히 브랜드를 두 개로 정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두 개의 브랜드는 특징이 명확했다.
그러니까 하나는 에세이, 하나는 경제경영과 자기 계발 부문이었다.
두 브랜드를 모두 살리려면, 영업과 마케팅도 명확히 해야 했다.
성향이 다른 두 가지를 모두 아우룰 수 있는 마케터를 두든지,
아니면 브랜드마다 마케터를 두어서 마케팅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했다.
출판사가 보유한 경제경영, 자기 계발 분야의 브랜드를 담당하는 편집자로 입사 후 출판사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이대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기존의 마케터는 에세이에 중점을 두고 마케팅하고 있었고, 그에 잘 맞는 마케터였다.
하지만 경제경영, 자기 계발 분야에는 관심이 없고, 그에 맞는 마케터는 아니었다.
지식수준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경제경영이나 자기 계발 분야는 에세이와 비교해서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해야 마케팅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에세이는 충만한 감성만으로도 마케팅이 가능하다면, 경제경영 분야는 정보와 지식 습득 없이는 마케팅 자체를 수행할 수 없다.
물론 '감성 충만'이라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지식 습득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 명이 다른 성향의 두 브랜드를 모두 마케팅하는 건 쉽지 않다.
능력이 뛰어나서 모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당돌하게 마케팅 팀장에게 경제경영 브랜드의 마케팅 채널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간 해당 브랜드 마케팅에 소홀히 한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상황임을 이해하고 있고, 그러니 채널을 넘겨주면 차라리 나와 나의 팀원이 관리하겠다고 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자기 팀에서 해야 할 일을 다른 팀에서 대신하겠다고 말하는데, 순순히 오케이 할 팀장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큰 짐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이라도, 말하자면 일의 근본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결정이니...
며칠 고민해보고 다시 의논하자는 답이 돌아왔다.
마케팅 팀장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했다.
결과는 예상 대로였다.
마케팅팀의 온라인 마케터가 해당 브랜드의 마케팅 채널을 넘기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문제는 앞으로였다.
그간 온라인 마케터가 소홀히 한 부분을 인정하고 좀 더 신경 쓰고 노력하겠다고는 했으나,
아무리 살펴봐도 쉽지 않아 보였다.
취향에 맞지 않는 브랜드를 마케팅해야 하는 마케터의 입장이야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이미 에세이에 중점을 두고 마케팅해온 상황에서 추가로 업무를 분배해서
우리 브랜드에도 힘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편집팀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편집팀이 마케팅까지 하겠다고 했으면, 할 일 이상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해당 브랜드의 마케팅은 원활히 진행이 안 됐고,
심지어 새 책이 나왔는데, 출간했다는 공고조차 올라오지 않은 적도 있다.
온라인 마케팅 요청을 하면, 1주일에 글 하나를 겨우 올리는 정도...
이런 상황인데, 담당 편집자라는 이유로 출간 도서의 영업이나 마케팅뿐만 아니라 매출 책임을 져야 할까?
책은 훌륭하다고 협회나 미디어의 추천을 받는데, 매출은 저조하다면 무엇이 문제인 걸까?
편집자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