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는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숨이 턱 막혔고,
아무도 모르게 길 한복판에서
눈물을 쏟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이면 조용히 기도했다.
“제발, 자연사하게 해 주세요.”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때,
사실, 아주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보다 먼저
상처가 찾아왔다.
믿었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쉽게 내 손을 놓았고,
내 진심을 가볍게 여긴 이들은
언제나 먼저 등을 돌렸다.
그 뒤로
나는 사람이 무서워졌다.
'관계'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나는 결심했다.
저자보다도 일찍,
서른이 오기 전에 죽겠다고.
'멋진 서른'을 꿈꾸며
20대를 필사적으로 버텨왔지만,
막상 코앞에 다가온,
서른 임박의 나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실망스러웠고,
삶을 끝내야 할 이유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막상 죽음을 결심하고 나니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일탈처럼
학창 시절 잘생겼던 친구들에게
SNS로 마구잡이로 친구 신청을 보냈다.
“어차피 죽을 건데 뭐.”
그 생각은
이상하게도
없던 용기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인연이
짱이었다.
짱은 말했다.
“나는 늘 기다리던 사람이었고,
너는 늘 찾아 헤매던 사람이야.
네가 날 찾아와 줘서
이 모든 게 시작된 거야.”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가
눈조차도 오래도록 머무르지 못하는
한겨울 같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짱을 만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겐 예쁜 꽃을 피우는
봄 같은 존재일 수 있구나."
짱과의 만남은 그저,
사랑을 찾은 게 아니었다.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그 사람 짱은
여태까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나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꼬옥 앉아 있어 줬다.
그의 사랑은 요란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배려들이 숨 쉬듯 모였고
나를 다시 살게 해 줬다.
마지막 화에 이실직고하자면,
짱도 결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 글에서는
그를 백마 탄 왕자처럼 그려놨지만,
투박하고 서툴고,
때론 우직한 고집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물론, 더 고장 난 쪽은 나다.
짱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완벽한 두 사람이 완벽하게 만나
아름답게 끝나는 동화가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견디며
끝까지 살아내는
삶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기도의 문장도 달라졌다.
"전쟁이 나지 않게 해 주세요"
“짱이 오래 살게 해 주세요.”
"짱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하루를 무사히 견디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금은 흐트러져도,
조금은 넘어져도 괜찮다고.
짱과 함께하는 평범한 날들이
이전에 꿈꾸던 화려한 삶보다
훨씬 더 빛난다고.
반짝이는 건
불빛이 아니라 마음이었고,
꽃이 피는 건 계절이 아니라
사람의 다정함이라고.
때로는 지금도
문득 무너질 듯한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그럴 때마다
짱이 내 등을 토닥이며 해주는 말이 있다.
“괜찮아. 우리 오늘도 잘 살아냈잖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오늘을 살아낸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짱’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마음 저도 참 잘 알아요.
저는 늘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봐
한 걸음도 쉽게 떼지 못하던 사람이었어요.
말 한마디에 오래 후회하고,
혼자서 상처를 상상해 만들고,
누가 나를 좋아하면 믿지 못했고,
누가 떠나가면 오래 미워했어요.
사람이 무섭고,
사랑은 더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참 길고,
밤은 더 길어서
이불속에서 울며 ‘내일이 안 왔으면’
빌기도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짱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도,
짱이 곁에 있는 지금도
삶에 커다란 파도가 올 때면
여전히 저는 흔들려요.
여전히 외롭고,
가끔은 아주 깊은 어둠을 지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겨우 붙잡는 한 줄기 생각은
‘그래도 짱이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것이고요.
이 이야기를 처음 쓸때,
누군가에겐 위로보다 상처가 되진 않을까,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는 왜 그런 사람을 못 만났지”
라는 생각에
더 외로워지진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자랑하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전하고 싶은 건,
그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삶이 나아질 거라는 확신보다
그 가능성이 더 큰 희망이 되어주기도 하니까요.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보고,
별일 없어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어쩌면 지금,
아주 천천히 당신 쪽으로 걸어오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어요.
제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건
멋져서도, 괜찮은 사람이어서도 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서툴러서
어디에도 다 닿지 못해
그 끝에서
우연히 손 내밀어준 사람을
더 간절히 붙잡았던 것뿐이에요.
저는 그렇게
누군가의 다정에 붙들려
겨우 하루를 건너고,
또 하루를 버텨낸 사람이니까요.
당신 쪽으로
조금 늦게라도 걸어와 주는 누군가.
그날이 오기 전까지,
이 글이
잠시라도 기대 쉴 수 있는 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애써 살아내는 당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마음 다해,
이 글을 읽는 당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