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던 시절,
나는 수박을 사지 않았다.
한 통은 혼자 먹기엔 벅찼고,
반 통은 또 애매하게 비쌌다.
그래서 여름이면 늘 망설였고,
대부분은 결국 포기했다.
계절의 맛이 그렇게
홀로 사는 사람의 식탁 위에서
조용히 사라지곤 했다.
결혼 후,
우리는 매해 수박을 산다.
장바구니에 수박 한 통을 담아오고,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한 사람은 칼을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껍질을 치운다.
남은 조각들은 통에 담겨
냉장고 한 켠을 당당히 차지하고,
가장 달고 붉은 부분은
자연스럽게 내 접시에 놓인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혼자선 번거로워 피했던 것들이
둘이 되자 당연한 일이 되었다는 걸.
결혼은,
그런 일상의 작고 사소한 변화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짱이 말했다.
“우리 둘이면,
세상을 2:1로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그 말은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결혼은 단순히 함께 사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커다란 외로움 앞에서
2:1로 맞서는 작은 동맹이란 걸.
내가 힘들 때
짱은 내 편이 되어주었고,
그가 무너질 때
나는 기꺼이 그 곁을 지켰다.
그 동맹은
가끔은 균열이 생기기도 했다.
시댁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짱은 나와 가족 사이에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다리가 되었다.
서로 다른 가족의 방식은
때때로 우리를 낯설게 했고,
눈물과 오해로
밤을 넘긴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짱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내가 네 편이야.”
그 말 한마디가
어떤 화해보다 더 깊이
내 마음을 녹였다.
결혼은 결국,
사랑 하나로 모든 걸 이겨내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 없어진 날에도
함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작은 선택들의 누적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인 오늘의 우리 곁엔
언젠가 우리가 상상한
늙은 날들이 놓여 있다.
지팡이를 짚고 나란히 걷는 날.
잔소리가 많아진 짱을 향해
나는 투덜거리겠지만,
돌아서선 다시 손을 내밀겠지.
“같이 가자”고.
노년의 우리 집 거실엔
수박 한통 대신
양 손으로 겨우 들 수 있는
작은 조각이 놓일지도 모른다.
이젠 둘 다 많지 못 먹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가장 달콤한 은 조각은
내 접시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통해
사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알게 되었다.
익숙함이 주는 위로,
책임이 만들어낸 믿음,
미안함이 남겨준 애정.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결혼이 뭐냐고?
글쎄.
수박을 함께 사는 일이기도 하고,
세상을 2:1로 버텨내는 일이기도 하고,
사랑이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