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와 나의 이야기 (1) -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가 있는 카페를 사랑한다.
처음 가는 카페에서 어떤 커피를 골라야 할지 고민되거나, 딱 커피 한 잔의 공간이 뱃속에 남아 있을 때, 그 한 잔의 기회를 실패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카푸치노를 선택한다.
카푸치노란 그런 것이다.
첫 경험에서도 실패 확률이 가장 낮은 커피, 카푸치노가 맛있으면 그 집 커피는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커피, 그것이 카푸치노라는 기준이다.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 1의 비율과 라테(우유) 1의 비율 그리고 거품의 1 비율이 조화를 이루는 커피이다.
1: 1: 1의 세 비율이 어울릴 때, 최상의 커피를 만날 수 있다.
비율에 대한 의심은 필요 없다, 나름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다. 그것도 프로페셔널로.
유럽커피협회 자격증은 파운데이션(Foundation), 인터미디어트(Intermediate) 그리고 프로페셔널(Professional)로 단계가 있는데, 3단계의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
처음 커피를 배우겠다고 생각한 것은 10년 이상 다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 그만두려고 행동했던 시점에서였다.
한 회사에서 10년을 다녔으니, 직장 생활에 대한 피로도 있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욕구도 있었다.
물론 카페 창업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카페 창업이란 일종의 이상적인 일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커피와 하루 종일 아로마 향을 맡으면서 서로를 공유하며 머무를 수 있는 공간 같은 이상 말이다.
물론, 사랑도 일이 되면 괴로운 법이라는 것을 모를 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현실적으로 창업에 대한 두려움, 즉 실패한 두려움이 그리고 금전적인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상'은 그냥 '이상'으로 남겨두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걱정이 늘 첫 커피를 카푸치노로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인생 최고의 카푸치노는 시드니에서 매일 아침 마셨던 글로리아 진(Gloria Jean)의 카푸치노였다.
스팀 밀크에 카푸치노 거품이 올려져 있으며, 그 위에 엑스트라로 뿌릴 수 있었던 초코파우더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원래 카푸치노 위에는 시나몬이 아닌 초콜릿 파우더를 뿌리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시나몬 파우더가 올라간 계기는 초콜릿 파우더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라고 한다.
이런 편견 때문인지 이상하게 "시나몬 파우더를 뿌려줄까요?"라고 묻으면, "아니요"라고 답한다.
물론 취향을 전혀 묻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알아서 내주시는 바리스타나 카페 사장님께 컴플레인을 건 적은 없다. 굳이 시나몬 파우더 때문에 아침부터 혹은 점심 그것도 아니면 저녁에 누군가와 논쟁할 필요가 없으니까. 시나몬 파우더가 올라간 카푸치노가 맛이 없다면 생각은 바뀌지만 말이다. 그런데 경험 상, 카푸치노 맛이 정말 마음에 안 들기는 쉽지 않다. (드물게 그렇게 이상한 카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글로리아 진을 발견했을 때, 그 감격은 잊을 수 없다.
발견한 기준으로,
첫 번째 매장은 서울역 옆 롯데마트 1층에 위치했었다. (과거형의 의미는 잘 알 것이다.)
두 번째 매장은 여의도 신한금융센터 건물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매장은 충정로 근처에 있다.
당연하게도 나의 감격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왜 호주에서 마셨던 그 카푸치노 맛이 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정말로 심각하게 그 문제를 많이 고민했다.
커피 맛이 다른 것에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누군가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씩 생각하면 나름 깨달은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첫째, 내가 마신 커피는 호주에서 마셨기 때문에 맛있었다는 것.
둘째, 커피는 원두도 중요하지만 우유의 맛도 중요하다는 것.
객관적이지 않은 나의 주관적인 추측으로는 호주의 젖소가 한국의 젖소보다 더 행복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서 마신 커피가 더 맛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수입해온 원두의 보관 방법에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셋째, 20대에 마신 커피를 소화시키기는 내 소화기관과 30대에 커피를 마셨던 소화기관의 노화의 차이 정도가 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소화기관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변하면 맛도 다르게 느낄 수 있지 않나 하는 추측이다.
요즘도 이상하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카푸치노를 마시지 않는다.
몇 번의 어긋난 경험은 프랜차이즈에서는 한 가지 마음에 드는 나만의 시그니쳐 커피만 마시자는 주의로 변했다. 각 프랜차이즈 브랜드에는 그래서 한 가지 좋아하는 커피의 종류만 있다.
새로운 카페에서의 첫 커피는 여전히 카푸치노지만,
요즘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카푸치노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내심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카푸치노는 늘 카푸치노.
이제는 내게 새로운 곳에서의 가장 좋아하는 선택으로 의미가 살짝 바뀌었다.
의미 부여는 하기 나름이고, 어쨌든 의미 부여는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카푸치노 하나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일은 무슨 커피를 마실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카푸치노 수다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