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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Jul 22. 2020

인간성의 상실과 회복에 관하여

필립 K.딕,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고전 SF : 필립 K.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





  근대의 발전 과정에서 탄생, 발전해온 SF 소설과 영화에서는 기술로 인한 생활의 풍요로움 이면에 자리 잡은 기술 외적인 것들의 붕괴와 사회 통제를 위한 폭력적인 권력 등 기술발전으로 인한 인간 사회의 모순을 핵심서사로 그려내고 있다. 발전된 과학 기술은 인류의 세계를 놀랍도록 풍부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믿음은 망상으로 철저하게 간주되며,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을 파괴할 것이라는 공포의 정서와 방황, 상실감이 주로 드러난다.


 

  과학 소설의 흐름은 자본주의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20세기 중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 전후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엘리트 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인 ‘레슬리 피들러’에 따르면, 과학소설과 서부극, 포르노그래피 등을 “항해와 비전의 신화”를 통해 문학의 고유한 모습을 회복시킬 수 있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그는 과학소설의 주제를 “현재적 미래와 인류의 종말”, 그리고 “신비로운 것과 있을법한 것, 실제와 가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SF 소설에서는 새로운 적대가 등장하는데, 단일적이지 않고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계급과 계층, 남녀의 성 문제, 환경파괴, 인간과 사이보그의 관계 등 다양한 방면의 문제들이 복잡한 관계를 가지며 뒤엉킨다. 미래 사회와 미래 인간의 관계는 중층적인 관계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필립 k. 딕의 소설에서는 사회와 인간 간의 적대관계가 이분법적으로 일반화되기 보다는 중층적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1. 사이버펑크 속성     


  ‘사이버네틱스’와 ‘펑크’의 합성어인 ‘사이버펑크’는 새로운 80년대 이후 새로운 과학 소설의 기법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이버네틱스는 노버트 위너가 제어와 소통의 과학으로 규정한 인공 지능학이며, 펑크는 70년대 말에 태동한 록음악의 한 지류로서 모든 사회적 제도와 규범에서 벗어나 절대 자유를 부르짖는 반사회적 저항운동의 메시지를 담은 과격한 음악을 의미한다. 첨단 기술과 사회저항적인 문화가 접목되었기에, 사이버펑크의 성질을 띈 소설에서는 모순성과 이단성을 띄기도 한다. 이 시대의 사이버펑크가 이전 과학소설 사이에서 가지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정보통신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최신 기술의 첨단성을 급진적이고 복잡하게 엮어낸다는 점이다. 국가 간의 대규모 핵전쟁이나 군사적 도발에서 나아가 사이버 공간과 그 속에 개입하는 인간을 주로 그려나간다. 가상현실이나 가상공간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이버펑크 성격을 가진 소설은 주로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적인 양상에 집중한다. 미래의 사회를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묘사한다. 또한 사이버펑크 소설은 체제저항적인 성격을 가진다. ‘펑크’의 단어가 가진 의미와 연결된다. 과거의 권력이 개인을 물리적으로 구속했다면, 정보기술이 발달한 미래시대의 권력은 ‘정보의 독점’에서 촉발된다. 투쟁이 일어나는 공간의 패러다임 변화가 사이버펑크로의 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권력이 가상적 형태의 현실과 개인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거리가 된다.



  필립 k. 딕은 사이버펑크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사이버펑크 장르를 확립한 선구자중 하나이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소설에서는 ‘가상공간, 인공지능’ 등의 전형적인 사이버펑크적요소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첨단 기술이 보편화된 암울한 사회, 그리고 고뇌를 지닌 개인의 모습을 통해 미래 세계관의 윤곽을 잡았으며, 이는 사이버펑크 소설의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는 미래사회의 일상을 ‘화성 여행’, ‘자기부상차량’, ‘자동차 고속도로’, ‘로봇 운전수’ 등과 같이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한 기술이 반영된 사회를 묘사하고 있지만, 이 이미지들은 인류의 활력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주인공 퀘일에게 몰래 심어졌던 ‘머릿속을 엿들을 수 있는 장치‘에서 확인할 수 있듯, 급진적으로 발전한 기술은 특정 권력이 개인을 억압할 수 있도록 하는 족쇄로 전락한다.           






2. 기억의 모티프 장치     


   기억이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 사물이나 사상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으로 정의된다. 필립 K. 딕의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외에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SF 장르 작품에 ‘기억’의 모티프가 자주 등장한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는 인간의 꿈과 희망조차도 가상기억으로 조작할 수 있는 사회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더글라스 퀘일은 화성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의 현실은 화성여행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간절한 퀘일은 가상으로 꿈을 조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리콜유한회사’를 찾아간다. 화성에는 가지 못하지만 화성을 여행하는 기억을 이식받아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 퀘일은 자신이 현재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라, 새로운 기억이 이식된 또 다른 존재의 퀘일임을 발견한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본래 화성의 임무를 수행하던 비밀요원이었다. 화성에서의 기억이 지워졌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를 다시 외계 생명체가 그의 착한 마음에 감동하여 퀘일이 생존해있는 동안에는 지구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기억으로 대체하려다 이 또한 사실로 밝혀지지만 기억 삭제와 이식의 위험이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SF 장르에서 ‘기억’에 대한 속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기억’이 개인의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퀘일의 조작된 기억이 그의 숨겨진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이 SF의 기억에 대한 모티프를 설명해준다. 이처럼 ‘기억’의 모티프는 과학 기술의 성장이 ‘기억 조작’을 가능케 하고 그것이 개인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과 문제를 일으킨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3. 포스트 휴머니즘 관점     


  프레드릭 제임슨은 필립 K. 딕의 소설을 “주체의 죽음, 자아의 마지막 섬광까지 의문시할 정도로 완전한 개인주의의 죽음”이라고 평가했다. 제임슨 외 많은 비평가들은 필립 K. 딕의 작품에 드러난 “탈 인간중심주의”에 집중한다. 탈 인간중심주의는 80년 이후로 과학 소설의 주된 비평의 흐름을 보여준다. 해러웨이의 싸이보그 선언 “우리는 싸이보그다. 싸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적 현실이며, 정치적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을 필두로 하여, 많은 비평가들은 과학 소설의 탈 인간중심주의가 가져오는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과학 소설의 탈 인간중심주의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대안적 주체성으로 지목되었다. 탈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유기적 신체가 더 이상 인간 정체성의 유의미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고인데, 필립 K. 딕 작품세계의 뼈대가 바로 유기적 인간성의 해체이다. 그가 그려내는 미래의 인간상은 이성과 의지를 가진 기존의 독립적 주체와는 상이한 종류의 주체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새로이 등장하는 인물의 특징은 탈 인간중심주의를 인식하는 주체적인 인물이 아닌, 자유주의적 개인성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개인적인 상실이 강조된다. 소설의 인물들은 디스토피아적 공포를 상징하는 기제를 바탕으로 묘사된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는 외부 세력의 침투와, 조종당하는 힘없는 개인의 편집증적인 불안이 드러나고, 한계를 극복하려는 개인의 노력은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욕구를 강조한다. 소설에 드러난 기억 조작 기술은 첨단적인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의 총체적 경험과 존재의 의의를 풀어가는 장치로 등장한다. 주인공 퀘일이 가지고 있는 ‘음모론적 편집증‘ 또한 인간 존재의 의의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래 인류의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모습을 보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본질과 고유의 가치를 논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기계 또는 첨단기술이 결코 지니지 못하는 무의식, 욕망,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필립 K. 딕은 그 어떤 첨단 기술도 모방 불가능한 인간의 내적 본질에 물음을 던지며, ‘유기적인 인간성‘을 현재의 인간 그리고 미래의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결정적인 요소임을 전달하고 강조한다.          




-  종합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주인공 퀘일의 정체성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리콜유한회사의 기억조작 기술에 결정되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의 자기 정체성은 유기성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다. 그가 인지하는 자신의 정체성은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무미건조한 속성인데, 직업과 사회적 명분으로 인해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체성마저 외부로부터 심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가까스로 복기해낸 그의 기억들은 퀘일의 내면 외부에 자리 잡은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퀘일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의 주체성에 관한 정확한 이해가 부재하고 있는 분열적인 상태인 것이다. 기술과 기술을 둘러싼 특정 권력에 의해 정체성이 분열된 인물을 통하여, 우리는 인간이 유지해온 이성과 독립적인 주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 퀘일은 끝까지 ‘기억 조작 음모’에 편집증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기술로 둘러싼 사회에서 더 이상 언어로 구체화되기 힘든 인간의 ‘주체성’을 문학의 창을 통하여 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편집증적인 음모론을 제시하며 첨단사회의 구조에 관한 비판을 시도하였으나, 이러한 ‘주체성 회복’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가 드러내는 ‘동등화된 주체성에 대한 욕망‘으로 단순화되는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대안적 현실이 선명하게 제시되기보다는 인간의 ’유기성’에 대한 개인의 욕구가 소설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소설의 세계관과 인물을 통해 제시되어지고 있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가치 성찰‘은 이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보다는, 욕망의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퀘일의 욕망, 정체성을 쟁취하려는 개인의 투쟁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특질이다.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욕망의 존재는 인간을 기술과 기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문제일 것이다.



  필립 K. 딕은 앞서 언급했듯 ‘사이버펑크’ 장르의 기반과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역할을 했지만, 그의 작품세계와 ‘사이버펑크’ 사이의 괴리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패러다임과 체제 저항적인 성격은 공통되지만, 기술/기계와 인간의 합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구분된다. 사이버펑크 장르는 인간의 가치와 본질은 온전히 기계와 기술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인간의 몸은 ‘고깃덩어리’로 전락한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필립 K. 딕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망에 대한 가능성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성의 탐색을 짚어나가며, 인간과 기계의 근본적인 구분에 대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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