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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를로스 안 Aug 03. 2022

담배 피우는 매력女

글감 : 이상

나는 이상하게도 담배 피우는 여자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담배 피우는 그녀들에게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행자 같은 모습이 있었고, 삶을 먼저 살아본 사람의 표정을 가진  같았다.


그건 아마도 엄마의 영향인 거 같았다. 우리 집 화장실 세면대 서랍 구석에는 언제나 담배와 라이터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꺼내어 피워 봤는데, 이런 맛없는 걸 왜 피우나 생각하며 다시 넣어둔 기억이 있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어서,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배웠고, 가족에게도 비밀로 했다. 나는 한 번도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가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누나와 내가 잠드는 한밤중의 시간에 화장실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 연기는 화장실 문과 문턱 사이의 보이지 않은 틈으로 빠져나와 캄캄하고 좁은 거실을 지나, 내 방문의 문턱을 넘어 천천히 퍼졌다. 나는 한밤중 살짝 잠이 들어 있었을 때도 그 담배 연기를 느끼곤 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그 담배 냄새가 좋았다. 긴 하루를 보내고 몸과 마음이 닳아버린 늦은 밤, 몰래 담배를 피우며 위로받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내가 줄 수 없는 위로를 담배는 줄 수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에게 저항감이 없었으며, 반대로 매력을 느꼈으니, 나의 삶에 담배 피우는 매력적인 그녀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그녀는 대학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만난 1년 선배였다. 카키색과 밝은 녹색의 스펙트럼을 가진 머리 염색을 했고, 키는 작고 얼굴은 귀여웠다. 선배는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갠지스강에 갔었는데, 시체를 태우는 의식을 보면서 그 냄새가 견디기 어려워 담배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녹색 빛이 나는 단발머리에 단정한 이목구비를 한 선배는 담배를 피우면서 먼 곳을 바라봤다. 나는 선배의 시선이 멈춘 그곳을 보며, 갠지스강 위에 붉게 타오르는 시체들이 내 눈앞에 있는 거 같았다. 선배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카리스마를 가진 선배는  남자 선배들에게 오빠가 아니라 형이라 부르는 종류의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의 저녁 시간에는 술을 마시며 게임을 했는데  두 번이나 선배와 입맞춤하는 영광을 얻었으나, 더 깊은 발전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나는 선배를 좋아했는데, 감정을 표현하는데 아직 어리고 미숙했고, 선배의 카리스마를 감당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두 번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군대 휴가를 나와서이다. 대학 여사친을 만나러 간 자리에 여사친의 베스트 친구인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의 첫 만남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의 어설픈 이야기에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의 웃는 모습은 귀여웠고, 양해를 구하고 담배 피우는 모습은 섹시하면서 매력적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그녀 모습에 나는 끌렸고, 그녀의 담배 연기까지 좋아하고 있었다.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학생이었는데, 그녀는 일찍 사회에 나와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거 같았다. 가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마음이 떨렸다. 나는 이제 어리지 않았고, 귀여우면서 섹시한 그녀를 감당할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랑을 했다.


나이가 들고나서는 담배에 대한 따뜻한 옛 기억만 남았고, 담배 피우는 여자들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 갔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 내게 담배를 끊었다고 자랑을 했다. 나는 몰랐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척했지만, 한 때 비밀스럽게 위로를 건넨 담배와 건강한 이별을 해 낸 엄마를 속으로 응원했다.


#담배 피우는 여자#매력#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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