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견디는 일만이 내 일의 전부일 때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78쪽,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 실현된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영종도로 1주일간 극기 훈련을 갔다. 그때는 대학 운동부의 군기가 높았다. 마치 혹독한 군인 훈련처럼 일과가 진행되었다. 아침과 저녁은 발을 맞추어 오래 달린다. 매일 1천 번의 목검을 휘두른다. 내가 목검을 휘두르는지, 목검이 나를 휘두르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배가 고파서 돼지처럼 밥을 먹지만, 물은 배탈을 우려하여 아주 적게만 먹어 변비에 걸린다.
아침저녁으로 오랜 달리기를 하면서 그녀를 생각했다. 이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하면서 아침저녁으로 그녀 이름을 구령 삼았다. “서울에 돌아가면 꼭 그녀에게 고백을 해야지”라고 굳게 마음을 먹는다. 달리는 내내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8월의 더운 극기 훈련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훈련을 다녀와서 오늘 꼭 고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벙어리처럼 그 말만 입에 맴돌다 실패하고 돌아온다. 더 이상의 애프터를 받아주지 않는 그녀에게 고백도 하지 못하고 친구로 남는다.
극기훈련에서 나를 지켜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은 겪었던 고통 위에서 내 가슴에 더 선명하게 남았다.
고통을 기반으로 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그녀의 오랜 친구로 남게 해 주었고 연인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다
고통을 올바르게 견디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고통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이다. By 빅터프랭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