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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껌딱지

공감적 괴로움 (feat. 자비명상)

by 까를로스 안

둘째 아이는 엄마의 껌딱지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식당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엄마 옆을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

일상 중의 사소한 일이 생겨도 엄마를 부르며 달려간다. 잠을 잘 때 엄마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

첫째와 둘째의 터울이 얼마 나지 않아, 어릴 때 둘째가 할머니 손에서 크면서 엄마에 대한 애착이 심한 거 같다.

둘째는 3~4살까지 ‘엄마‘하며 울지 않고 ’할머니’하며 울었다.


아내가 힘들다며 아이들을 재우는 미션을 나에게 맡겼다.

첫째는 독립심이 강하고 혼자서 잘 자는 편이다. 엄마 껌딱지인 둘째를 재우기 위해 침대에 함께 누웠다.


오늘이 내가 둘째를 재운 지 3일 차가 되는 날이다.

엄마 껌딱지 둘째는 오늘은 반드시 엄마랑 자겠다며 대성통곡 중이다.


“엄마랑 자고 싶어”

“왜 맨날 엄마랑 못 자게 해”


초등학생이 되면 혼자 자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타일러 보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둘째의 울음이 10분이 넘어가고, 엄마와 못 자게 하는 것이 아빠인 나 때문이라는 아이의 울분이 느껴진다.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에 마음이 격동한다. 아이도 나도 괴롭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또 나 같아서 참기 힘들다.


공감은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는 상대의 고통을 아는 인지적 공감. 두 번째는 상대의 고통을 느끼는 정서적 공감.

세 번째는 상대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살핌의 행동을 하는 공감적 관심.

이 과정 중 두 번째 정서적 공감에서 상대의 고통이 나에게 전이되는 것을 공감적 괴로움이라고 한다.

공감을 통한 괴로움이 커지면 공감의 부정적 형태인 공감적 괴로움이 된다. 괴로움은 다행한 형태로 나타난다. 감정노동이 큰 간호사들이 쉽게 겪는 번아웃.

공감적 괴로움이 커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척 회피 한다. 길을 가다 노숙자를 만나면, 쳐다보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노숙자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은 정서적 괴로움의 예다.

상대의 고통을 보고 괴로움에 빠지는 대신 도움을 주는 사랑의 마음을 내는 공감적 관심이 공감의 배신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공감적 관심은 자비의 핵심이기도 하다.



둘째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에 나는 공감의 배신인 ‘정서적 괴로움‘에 갇혔다.

아이의 우는 소리에 내 마음이 격동했고, 화가 났다. 에너지가 다는 느낌이었다.

20분의 고통 끝에 아내가 나섰다. 아내가 대신 재워주기로 했다.


자비명상을 하면서 공감과 자비의 차이점을 배우고, 공감의 함정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너무나 쉽게 그 함정에 빠진다.

감정도 습관이다.


다시 둘째 아이를 위한 자비명상을 한다.


아이가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아이가 엄마의 품을 벗어나 자유롭기를

아이가 따뜻하고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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