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스물넷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_ 이시형, 박상미 저
"아침 여명에서 저녁의 황홀한 낙조까지 우주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조화롭게 잘 돌아갑니다. 틀림없이 우연이 아닌 위대한 힘이 완벽한 주기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우주의 일부입니다."
나도 '우주의 일부'였다. 아니 또 과거형을 쓰다니..,
나는 우주의 일부였고,
나는 우주의 일부이고,
나는 우주의 일부로 계속 살 것이다.
우주는 조화롭다.
나는 우주의 일부다.
그러므로 나는 조화롭다.
밀가루 도넛이 아닌 통밀빵을 씹고
설탕대신 알룰로스를 넣으며
감자칩 대신 찜통에 불을 올린다.
해가 지기 전에 양말을 치켜올리고
운동화끈을 확인하고
달린다.
전부터 사고 싶던 가방을
필요 없다고 결론 낸 가방을
할인하는지 다시 기웃거리던 가방을
장바구니에서 삭제하고
PT를 상담하고 바로 결제한다.
조화로운 우주의 일부,
끔뻑대던 그 점 주변이 점점 환해진다.
2024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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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메모장에 저장되어 있던 글이다. 작년 7월 말부터 러닝을 시작했으니, 이 글을 썼을 때쯤이면 30분쯤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시기다.
가끔 예전에 써둔 글을 보면, 정말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마치 어디서 발췌해 놓고 제목을 빠뜨린 것처럼 낯설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너무도 나 같지 않게 느껴져서 그렇다. 아마도 그때의 기분, 읽었던 책, 보고 들었던 영화,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기를 떠올리니 작년 여름이 떠오른다. 그 여름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비는 쉬지 않고 내렸고, 기온은 높은데 습기에 더해 내 몸은 갑자기 몰려오는 열감으로 땀을 미친 듯이 흘렸다. 지금도 종종 그렇지만, 그때는 그 습하고 흐린 날씨 속에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밤이면 괜히 불안하고, 이유 없이 괴로웠다. 비 오는 날은 하루 종일 밤처럼 느껴졌다. 그건 분명 우울증의 증상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약이 나쁜 건 아니라는 걸 안다. 약을 먹으면 편해질 수도 있었겠지만 버텨보고 싶었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밖으로 나갔다. 몸의 이상 반응으로 흘리는 땀이 아니라, 달리기를 통해 흘리는 ‘정당한’ 땀은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3개월 넘게, 일주일에 서너 번씩 러닝을 했다. 어느덧 가을 햇살이 다시 반겨주었고 나도 조금씩 밝아졌다. 무엇보다도 달리기로 극복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올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나는 괜히 겁이 났다. 트라우마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여름은 마른장마에 쨍쨍한 폭염이다. 햇살 과잉이다.
이 뜨거운 햇살이, 작년보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나에게 하느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주시는 ‘빛’처럼 느껴졌다.
빅터 플랭클의 의미치료에 관한 책,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절반도 읽지 못하고 덮어두었었다. 다시 펼쳐볼까 하다가, 그냥 소설책을 읽기로 했다.
내 삶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신해철의 그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냥 사는 게 목표인 거야. 살아내는 게."
그 말이면 충분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