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쟁이와 작별하기

백일백장 마흔넷

by 민희수

내향인으로 살다 보면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나 혼자만 있고 싶은 건 아니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나름 바쁘게 스케줄을 챙겼다. “더워지기 전에 보자”라는 말로 약속을 잡고, 반가운 시간을 나눴다. 하지만 여름이 성큼 다가오자 만남의 기운도 시들해졌다. 한순간 만남이 뚝 끊겨버린 듯한 시점이 생기곤 한다.

성당 봉사도 하고, 병원에 다니고, 친정과 시댁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독서 모임에도 나가고 합평회에도 참여했다. 오늘만 해도 성당 봉사와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공허함이 고개를 든다. 나를 먼저 찾아주는 이가 없는 기분, 외롭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어릴 적에 품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내 안에 깊숙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곁에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남편이 있고, 공놀이하자며 애교를 부리는 리코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목걸이지갑 속 열쇠를 꺼내 적막한 집에 혼자 들어가던 아이. 낮에는 지금처럼 볼 게 없어서 AFKN이라도 켜놓고 엄마를 기다리던 그 아이. 생떼는 잘 부리지 못했고, 사실은 겁이 많았지만 씩씩한 척하며 칭찬을 받고 싶어 했다. 욕심이 없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세상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마음을 숨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조금 하다가 멈추고 다시 시작하다가 금세 돌아서곤 했다. 그러면서 “시도만으로도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것이 30대 중반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좁은 새장 속에서 날개를 펴지 못한 새처럼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 큰 용기를 내어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세울 만큼 화려한 성과를 낸 건 아니지만 그때만큼 자신감이 높았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잘 살아왔다.

그런데도 새장 속의 아이는 가끔씩 투정을 부린다. 투정에도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건지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기억이라는 건 늘 왜곡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충분히, 아니 초과해서 생떼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린 시절이 더 의젓했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아이 같아진 건 아닐까 싶다.


오늘 나는 그 아이를 달래며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위로는 이미 충분히 했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그냥 습관적인 투정일 뿐이라고.

거창한 정신분석 따윈 필요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다시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방해꾼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을 방황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복습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외롭다고 징징대는 시간은 어제로 끝내고, 오늘의 나는 다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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