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마흔다섯
저녁에 남편을 데리러 나가려는데 문 앞에 택배가 잔뜩 쌓여 있다. 남편이 직구로 자동차 용품을 몇 가지 샀다더니 꽤 큰
덩어리들이 줄지어 도착했다. 며칠 전에는 내가 9월 초 여행을 앞두고 직구로 주문한 물건들을 받았다. 바닷가에서 필요한 아쿠아슈즈, 비치타월, 비치백, 방수팩, 매트까지—꼭 필요한 것들만 산다고 산 것들이다. 이것저것 더 사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장바구니를 과감히 정리하고 결제 버튼을 눌렀었다.
남편은 11년 만에 구입한 새 차에 필요한 용품들을 검색해 주문했다고 한다. 서로 장바구니에 뭘 담는지는 전혀 간섭하지 않으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그 모습이 마치 산타클로스가 두고 간 선물꾸러미 같아서 급히 주차장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굳이 뒤돌아 사진을 찍었다. 돌아와 찍으려면 까먹을까 봐서.
모든 물건이 ‘내돈내산’이지만 제품 설명 사진처럼 괜찮은 물건이 도착했을 때는 뻐근한 손가락과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검색했던 노력이 보상받는 듯하다. 8월의 무더위 속 중국에서 날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택배들을 보며 아직 오지 않은 새 자동차와 여행지를 떠올려본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설레는 순간인데 이제는 마음이 쉽게 들뜨지 않는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신난다 옵션’을 하나 달아주기로 했다. 없으면 만드는 거지, 뭐.
요즘은 마음도 커스터마이징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