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사라진 자리

백일백장 쉰셋

by 민희수

"작은 섭섭함이 말과 행동 속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결국 어느 순간 금이 갑니다. 만약 다시 회복하고 싶다면, 처음 쌓아 올린 시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건강을 위해 체중계를 들여다보며 다이어트를 하듯, 우리가 지은 잘못도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정선을 넘기기 전에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내 생각이 아니라, 지난 주일 미사 때 신부님 강론 중의 일부분이다.


정확히 2년 6개월 전, 연락이 ‘끊긴’ 것이 아니라 내가 ‘끊은’ 친구가 있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절친이었다. 날짜를 따로 기록해 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일이 이틀 차이라 그즈음 함께 식사하며 자축했던 기억 덕분에 그 시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 친구의 말이 유난히 거슬렸다. 대놓고 화를 내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비난조로 대꾸하고 말았다. 사실 그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날 때마다, 통화할 때마다 시한폭탄처럼 터질 듯한 불편함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30년 지기 친구도 결국 관계의 유통기한이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다 그날 친구의 몇 마디가 마지막 불씨가 되어 결국 관계를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친구를 잊은 것은 아니었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미움이 사라지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불현듯 친구가 떠올랐을 때 이상하게도 미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긴 시간 동안 차마 용기 내지 못했던 ‘전화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막상 시도하려니 떨렸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순간 조금 씁쓸했지만 곧 신기하게도 마음이 오히려 한결 가벼워졌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내 안에 있던 미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그저 나를 용서하지 않아서 전화를 받지 않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다른 좋지 않은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미사를 시작할 때 신부님은 늘 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말씀하신다. 지난 주일에 나는 친구를 떠올렸다. 그러자 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일들이 물밀듯이 떠올랐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고맙고 또 미안했다. 다시 연락되지 않아 섭섭한 마음보다 그런 고마운 친구가 내 옆에 30년이나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감사가 차올랐다. 그것은 분명 내가 크게 복 받은 인생이라는 증거였다.


우리는 흔히 관계를 소유물처럼 여긴다. 내 곁에 있으면 내 것이고 떠나면 잃어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관계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머물다 가는 것’ 일지 모른다. 친구는 이미 내 삶 속에 30년을 머물렀다. 그 시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켜켜이 남아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이별조차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함께 있음’ 일 것이다.

미움이 사라진 자리에 고마움만 남는다. 그 고마움은 큰 사랑으로 자라나 나를 한층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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