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백장 쉰둘
저녁은 늘 일찍 먹는다. 요즘은 특별한 일 없는 날엔 다섯 시만 넘으면 먹는다. 공복시간을 늘리려고 하다 보니 빨라졌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무언가 달달한 게 당긴다. 점심에는 커피와 디저트를 죄책감 없이 먹는데 저녁은 늘 고민이다. “오늘은 참자.” 마음을 다잡아도 냉동실 속 쟁여둔 아이스크림이 나를 부른다. 아이스크림은 꼭 집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존재다. 먹지 않아도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니까.
하지만 오늘은 낮에 약속 있어서 디저트까지 많이 먹었으니 양심상 자제해야 한다.
꺼낼까 말까 냉동실 앞에서 망설이던 순간, 마침 전화가 왔다. 누군가의 수다가 나를 살렸다. 한참 떠들다 보니 리코 산책 시간이 되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서는 리코 발 씻기랴 드라이하랴 분주한 와중에 입안이 너무 텁텁하게 느껴졌다. 결국 아이스크림 대신 치약을 선택했다.
나는 자칭 ‘치약 유목민’이다. 이것저것 어떤 치약이 더 상쾌하고 좋은 맛과 향이 나는지 이것저것 찾아다닌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같은 치약만 쓰면 지겹기도 하니까 화장실에 두세 가지를 세워두고 그날의 기분에 맞게 선택한다. 요즘은 은은한 자스민향에 자주 손이 간다. 양치를 마치고 나면 놀랍게도 후식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향이 주는 착각일까? 어쨌든 입안이 개운해지면 더는 먹을 생각이 사라진다.
게다가 이미 양치를 해버렸다는 사실은 가장 강력한 ‘식탐 차단 장치’다.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유혹해도 '다시 양치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모든 게 정리된다. 그 귀찮은 일을 또 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이겼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치약이 이긴 셈이다. 후식 대신 치약, 꽤 괜찮은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