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형근 Aug 29. 2021

당신의 속도로 하루를 운전하세요.

제주도를 여행했어요. 제주도는 시내를 제외하도로에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하기 좋아요. 해안도로와 숲길을 운전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돼요.


한라산 부근 1차선 숲길을 지나고 있었어요. 저는 규정 속도를 지켜서 운전하는 편이에요. 경치도 볼 겸 50km로 주행하고 있었죠.


갑자기 뒤에서 차 한 대가 따라붙었어요. 잠시 후 쌩하고 반대 차선을 가로질러 제 차를 앞질러 갔어요. 1차선 도로가 많은 제주도에서는 흔한(?) 광경이에요.


저는 생각했어요.


"빨리 간다고 해서 몇 분이나 일찍 도착한다고, 성질 급하네."


하루의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는 길, 다시 1차선 도로를 주행했어요. 제 앞을 달리는 차가 느릿느릿 움직였어요.


"답답하구먼"


저는 가속 페달을 밟고 반대 차선을 가로질러 앞 차를 추월했어요.


응?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문득 생각했어요.

제 차를 추월했던 운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게 추월당한 운전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옆을 지나가는 모든 자동차는 나보다 빠른 차, 나보다 느린 차 두 개로 나눌 수 있어요. 나를 기준으로 상대가 빠른지, 느린지 정해져요.


운전처럼 일상의 모든 일은 상대적이에요. 저는 A보다 자료를 잘 만들지만 B보다 잘 만들지는 못해요. C보다 꼼꼼하지만 조리 있게 말을 잘하진 못해요.


저는 딸보다 키가 크지만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나를 보며 그 정도밖에 못하냐고 타박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나를 부러워해요. 내가 내 위치를 정하는 건지 남이 내 위치를 정하는 건지 긴가민가해요.


우주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따르는 것처럼 사람도 상대성 이론에 종속돼요. 남보다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어요.


나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보다 부족할 수 있어요. 나보다 빠른 사람을 볼 때는 나보다 느린 사람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나는 누군가의 복일 수도, 혹일 수도 있어요.




언제나 앞을 보며 걸어야겠지만 가끔은 뒤를 돌아보세요. 하늘만 보면 뒷목 저리니 틈틈이 땅도 쳐다보고요.


항상 남보다 잘할 수는 없어요.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어요. 괜찮아요.

지금 속도 그대로 하루를 운전하시기 바랄게요.

작가의 이전글 남은 나를 모른다. 나도 남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